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원장

얼마 전 수도권의 집중호우는 여러 면에서 생각의 회로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자연과 기후, 성장, 협력, 신뢰, 책임 같은 온갖 교과서적 공리 개념이 모두 동원된 재난이었다. 

퇴촌 천진암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대저택을 지어 놓고 사는 친구네가 산과 하천에서 내려오는 물과 돌더미를 이겨 내지 못하고 정원과 대문, 연못이 순식간에 쓸려 내려가 정원수 역할을 하든 소나무들이 뽑혀 나가 엉망이 됐다. 나뒹구는 소나무 잔해를 보며 다시 살릴 수 있느냐고 묻자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잔뿌리 흙들이 털려 나가고 다치면 다 끝난 것이라고 했다. 

이식할 때 역시 조심스럽게 잔뿌리를 흙으로 감싸고 봉을 만들어 적당하게 압력과 수분, 공기가 유지돼야 성공하는 이식이라고 했다. 큰 뿌리는 유사시 그냥 잘라 버려도 되지만 잔뿌리들은 치열하게 내부적으로 자리 다툼하며 영양분을 빨아들여 생존을 지켜가기 때문에 작은 소홀도 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최근 집중호우 같이 다소 무차별 논의되는 ESG 경영은 사회적 맥락을 읽는 힘으로 정리돼야 한다. 그래서 그 보고서는 실현가능과 비전을 담아내는 애뉴얼 리포트나 연사(年史) 개념으로 완성돼야 한다. 단기 성과는 물론 중장기 자기 혁신을 기반으로 동반성장과 상생 협력, 신뢰 기반 경영활동, 책임경영의 지속적 실천을 밝혀야 한다. 분명하고 명확한 수학적 잣대는 필요한 계량지수 외 그 어느 것도 강요되고 맞추려고 해선 안 된다. 더구나 ‘보이지 않는 가치지향점’을 추구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조금씩 진행되게 만들어야지, 교과지침식으로 침대에 몸을 맞추라는 ‘프로크루테스’식 보고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ESG는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부수적인 일’ 정도로 인식된다. 더하여 원청기업과 대기업, 수출기업까지 개별적 상황논리를 무시하고 내 잣대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 보고서로 기본질서 관계를 유지해 나가라고 한다면 그런 ESG가 과연 필요한 지속가능성의 터전인가 묻고 싶다.

기업 경영에서 전략 기획은 거의 모든 경영행위의 기반이고 성과를 예측하는 기준이며, 외부 여러 거래 당사자들과의 관계 자산을 확대시키는 전략의 힘을 나누는 지렛대 일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마다 ESG는 보이지 않게 경영자의 생각을 선의로 가다듬고 경영과 삶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 

기업마다 가진 작은 변화 요인들을 파악하고 실효적인 대응 전략, 실천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가도록 해야 한다. 결코 혁신의 방향성에 동의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스케일 큰 학문적 잣대를 들이대며 ‘지금, 여기에’ 맞추라고 하면 경영의 모든 부문, 특히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가치에는 함몰자본(sunk capital)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ESG를 지도나 컨설팅 차원에서 손보겠다는 접근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은 계획, 작은 실천들이 기후환경과 사회적 가치, 정도경영으로 크게 나아갈 수 있도록 현상을 진단하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스펙트럼 넓은 평가항목에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 보고서를 요구하면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두 배만큼 CEO나 직원들 이야기를 듣고 보고 경험하며 잣대를 들어야 한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평가 잣대를 대한민국 중소기업체에 들이밀면서 요구하면 결국 강자논리에 이분법적 적자생존 우선 수용의 독소 조항을 모든 상황 고려함 없이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은 10년 넘게 ‘녹색경영CEO아카데미’를 진행해 오면서 ‘녹색가치’를 사회적 자산으로 보장 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경주해 온 결과, 녹색가치가 ESG 실현가능성을 열어가는 브랜드임에 다시 한번 자부심을 가져 본다. 

그래서 초개인화 시대에 걸맞게 각 기업마다 다르게 우리만의 세세한 평가항목들을 만들어 크고 담대한 혁신도 좋지만 작고 아름다우며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나눔과 배려의 사회학적 기준을 독자 모델로 제시하고자 한다. 녹경원의 ESG보고서가 기업의 작고 여유로운 변화의 물줄기로 그 맥락이 이해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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