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람 어진 인물. 인천 대인고등학교가 내년이면 30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1991년 대인고등학교는 그야말로 인천시 서구 공촌동 논바닥 한가운데 빨간 벽돌로 만들어졌다. 지금과 같은 강당이나 도서관도 없이 그저 학교 건물 딱 하나로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서구는 인천지역에서도 ‘도심’보다는 ‘농경’이 어울리는 동네였다.

 대인고는 당시 ‘대인종합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지역적 여건과 특이한 건물, 비교적 세련되지 못한 교복 디자인으로 온갖 악동과 같은 별명이 따라붙는 학교였다. ‘덩그러니’, ‘논바닥 한가운데’, ‘공장 작업복’, ‘빨간 감옥’ 등이 대인고의 별칭이다. 손흥민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가기 15년 전부터 이미 대인고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채택한 괴짜 학교였다.

 하지만 지역에서 몇 없는 스쿨버스를 운영하는 고등학교였고, 지척에 자리한 지역 내 최고 명문고와 경쟁을 벌이는 유일한 학교였다.

 특히 초대 설립자 고(故) 김병수 이사장은 재벌가도 아닌데다 자수성가했다고도 표현하기 딱히 어려운 경제력에도 오로지 검소·절약·저축만으로 학교를 세웠다고 알려지며 대인고는 근방에서는 ‘젊음’, ‘도전하는’, ‘악동’ 이미지가 강했던 모양이다.

 김병수 이사장 하면 밝은색 점퍼에 고무신, 자전거 그리고 막걸리 등을 떠올리는 이가 대다수다.

 대인고 교사가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은빛 자전거를 타고 온 노옹의 아름다운 꿈으로 문 열었습니다/ 대지를 닮은 어진 꿈이었습니다/ 튼실하게 이어가야 할 숙명의 꿈이었습니다/ ‘평생의 노동’을 씨앗으로 하여 세운 배움의 터전이었습니다."

# 오는 길

 대인고등학교는 아니, 당시의 대인종합고등학교는 아침에 스쿨버스를 놓치면 그야말로 답이 없는 학교였다.

 지금은 학교가 위치한 서구에 사는 학생만 대인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당시에는 인천 전역에서 희망자를 받아 성적 순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인천 전역에서 스쿨버스를 놓쳐 수십 분 만에 한 번씩 나타나는 시내버스에는 대인고 학생들은 물론 인근 2개 학교 학생들로 가득 차 버스에 욱여넣어지기라도 하면 다행히 지각은 면하는 수준이었다.

 피란민들이 포탄을 피해 달아나듯 어떻게든 버스에 올라타려던 대인고와 인근 2개 교 학생들은 매일 아침 작은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이는 단언컨대 지금의 지옥철보다 훨씬 더 지옥이었다. 그나마 학교와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내려 학교에 가려 해도 족히 500m는 걸어야, 아니 뛰어야 했다. 지각하면 괴로운 수준의 불이익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일어난데다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등굣길에 나서 스쿨버스를 여유 있게 탄다 한들, 어두운 작업복 같이 생긴 교복을 입은 선배들은 갖은 꼬투리를 잡아 학년과 반, 이름을 적어 갔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지하 레슬링장으로 호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인고는 ‘오는 길’이 다르다. 변했다.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다. 스쿨버스가 없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학교 정문에 버스정류장을 만들었고, 이곳에 무려 7개 버스 노선이 지난다. 지금은 그 어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선생님이 지각했다고 매를 드시겠느냐만, 아무튼 대인고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려 다섯 걸음만 옮기면 교문을 통과하는 혜택을 누린다.

 더욱이 인천지하철 2호선 검바위역이 가까워 학생들 상당수가 지하철을 이용해 등·하교한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이 모두 대인고가 이룬 성과는 아니다. 그저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나라가 부흥했으며, 그에 따라 대인고 학생들이 3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실효적인 혜택을 누린다는 의미다.

 

 # 가는 길

 대인고는 설립자의 뜻에 따라 크고 어진 인물을 만들려고 개교 첫해부터 끊임없이 노력했다.

 처음 문을 연 주제에 목표는 항상 같은 지역에 위치한 명문 고등학교였고, 항상 라이벌 구도를 그렸다. 끝내 해당 학교를 넘어서 본 적은 없지만 지역 내 유일의 라이벌 학교로까지는 성장했다. 

 학교는 처음부터 서구 공촌동 그 자리에서 움직인 적이 없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오는 길’은 자연스레 발전하고 성장했다지만 대인고의 ‘가는 길’ 즉, 교육 항로는 항상 스스로 발전하고 변했다.

 그 시작은 설립자 의지였고 사립고등학교이기에 가능했는데, 전국 최고 수준의 교사를 끌어모으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21명을 뽑는데 599명이 지원했고, 대인고는 학생 교육을 맡길 인재를 선별하려고 그들의 성적은 물론 학생시절 학적부까지 뒤져 인성까지 최대한 확인하려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수업 지도 능력을 알아보려고 모의 공개수업도 진행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해당 과정을 모두 통과한 교사들은 심사안을 만들어 학교에 제출해야 했으며 이사장과 이사, 교장·교감이 만장일치로 선택한 교사 21명이 대인고에서 교편을 쥐었다.

 선발된 교사 상당수가 20대로 젊었고, 신생 학교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으로 차고도 넘쳤다. 비교적 다른 학교보다 교사와 학생 간 나이 차이가 적어 공감대 형성이 어렵지 않았던데다 사립고라 가능했지만 우수한 성적에 뛰어난 인품을 가진 인재가 한데 모여 한뜻을 품었기 때문이다.

 

 # 갈 길

 교사·학생 간 공감대가 뛰어남은 곧 학업에 대한 서로의 욕구를 마음껏 표현하고 해소가 가능함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배우고 싶어 했고, 교사들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다. 

 이에 따라 대인고는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해 학습하고 누구나 각자의 소중한 꿈을 실현하는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대학교 수업과 비슷한데, 국어를 심화국어와 실용국어, 고전 읽기 등으로 나눠 학생은 원하는 수업을 들으면 되는 방식이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보니 대인고는 유독 형제가 많이 입학한다. 학교를 홍보하려고 하니 최근 5년간의 자료를 내어 달라는 요청에도 대인고는 ‘형제 입학’을 빼놓지 않고 자랑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진학은 부모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데, 학부모도 동의했다면 부연이 필요없을 정도라고 판단된다.

 대인고는 이 밖에도 인천시교육청 지정 ‘세계시민학교’를 운영 중이다.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계와 소통하는,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학생들로 키워 내기 위함이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만 열면 세계 곳곳의 소식과 정보를 언제든 접하는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발맞춘 프로그램이다.

 대인고는 인도의 DAV Public School과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다문화를 이해하고자 필리핀이나 중국·멕시코·페루·일본·베트남 출신의 한국 정착민을 초청해 음식과 문화를 체험토록 한다.

 또 국경없는의사회와 교류하며 위성사진으로 건물과 길을 찾아 지도를 완성하는 Missing maps program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시민으로서의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다.

 대인고는 그야말로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할, 아니 창대한 학교라고 단언한다. 이미 이를 이뤄 냈고, 보여 줬다.

 작업복에서 벗어나 그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멋진 ‘학잠(학교 점퍼)’을 갖춘 사실만 봐도 금세 눈치를 채지 않겠는가.  

  이인엽 기자 yy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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