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18세의 한국 젊은이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젊은 나이에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예술적 영감과 테크닉이 압도적 우승으로 이끈 힘이다. 한동안 "허준이처럼 수학하고, 임윤찬처럼 음악하라"는 패러디 문구가 유행처럼 떠돌았다. 

그런데 신드롬에 가까운 임윤찬 현상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단테의 「신곡」 번역본을 모두 구해 거의 외울 정도가 됐다는 그의 고백은 "가장 깊은 아픔을 겪었을 때 음악이 탄생한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과 "고통 중에도 별을 바라보라"는 「신곡」의 메시지가 중첩됐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은 신성(神性)에 이르기 위한 인간의 구도자적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지옥·연옥·천국 편으로 이뤄진 장편 서사시다. 기독교적 의미의 구원을 꼭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성장의 여정을 유감없이 보여 주기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른바 현재진행형 고전이다. 임윤찬은 보통의 또래 학생과는 다르게 「신곡」에서 인간의 성장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성장’은 필생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개선시켜 나갈 때 확보될 수 있는 내적 표시로 ‘성공’과 확연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흔히 성공이 개인의 능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탁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면, 성장은 자기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내적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은 늘 실패와의 대결 구도 속에서 자리매김되지만, 성장은 실패를 대립관계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성공의 조건으로 포용한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제 실력이 더 느는 게 아닙니다"라는 그의 수상 소감은 단순한 겸손함이 아니라 이미 성장을 위한 구도자의 길에 들어선 자의 담담한 고백인 것이다. 

임윤찬의 성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스승의 역할이다. 러셀 셔먼-손민수-임윤찬으로 이어지는 사제관계에서 특히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러셀 셔먼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그는 임윤찬의 스승 손민수를 "반쪽짜리 음악가, 손만 돌아가는 기계"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고전 읽기와 시사 문제와 관련 신문 스크랩을 과제로 제시했고, 이러한 전통이 제자 임윤찬에게도 그대로 전수됐다. 예술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멋진 방식이 3대에 걸친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 art는 라틴어 ars에서 나왔고, 더 소급하면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비롯됐다.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명을 받아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허약함을 보완해 생존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불과 기술을 줬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 생존의 기술로서 등장한 테크네는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삶을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일종의 장인정신으로 통용되다가 일반적 규칙에 의거한 숙련된 기술을 넘어 예술까지 포함하는 단어로 발전했다. 테크네를 기예(技藝)로 번역하는 전통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예술의 어원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예술은 숙련된 기술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야만 도달할 수 있는 모순의 장르다. 이렇듯 테크니션과 아티스트는 유사한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를 지닌다. 임윤찬은 마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처럼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를 구가하나 정신적으로 궁핍한 이 시대에 임윤찬이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리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Mens et Manus. 라틴어 정신(Mind)과 손(Hand)을 의미하는 이 말은 세계 최고의 연구중심대학 MIT의 모토다. "테크놀로지의 진정한 구현은 인간의 정신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 모토를 받아들인다면 최고의 공학부를 갖춘 MIT가 어떻게 이에 전혀 손색 없는 인문사회학부를 갖추게 됐는지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임윤찬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우리 대학이 지향해야 할 인재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인간이 그려 낸 무늬(人文), 인문학은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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