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농경시대 우리 조상들은 동족부락을 이뤄 살면서 마을 근처에 길지를 찾아 대대로 조상 분묘를 설치하고 이를 존엄한 장소로 여기며 훼손을 금하는 신앙과 다름없는 관념을 갖게 됐고, 선조봉존사업을 위해 동족부락마다 종중을 만들어 해마다 후손들이 벌초를 하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시제를 모시며 분묘를 관리해 왔다. 

그런데 이런 평온과 화목은 어느 순간 깨지고 종원 간 불화와 반목으로 폭행사건,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조상들은 숭조정신을 실천해 오면서도 공적 장부 미비의 분묘 설치 토지에 대해 단순히 종중 재산이라고만 인식하고 오랜 세월을 지내오다 종중 소유가 아님을 발견하자 이성을 잃고 이런 불행한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수차례 한시법으로 시행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법)은 조상들의 종중 재산에 대한 소유 관념에 대혼란을 가져왔다. 

일제는 식민통치에 필요한 토지제도 확립을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면서 국민의 무지와 무관심을 틈타 철저한 조사도 없이 ‘사정’이란 이름으로 토지와 임야대장에 소유자를 등재한 경우가 많았고, 법에 따른 등기도 유력자들의 보증서만 믿고 처리해 실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많았다. 

문제는 공적장부의 소유명의인이 종중 유력자나 심지어 친일부역배들 개인 명의인 경우 다른 종원들의 조상 분묘는 타인 소유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것이 돼 이장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정을 받은 토지소유권에 관해 "조선임야조사령에 의한 임야조사서에 소유자로 등재돼 있는 자는 재결에 의해 사정 내용이 변경됐다는 등의 반증이 없는 이상 토지 소유자로 사정받고, 그 사정이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면서 강력한 권리추정력을 인정하고 있고, 법에 따른 등기도 동법 소정의 적법 절차에 따라 마쳐진 것으로서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로 추정하고 있어 다른 종원들이 소를 제기해 종중 토지로 환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면 잘못된 토지 사정이나 법에 따른 개인명의 등기로 타인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결과가 된 다른 종원은 등기명의인의 분묘 이장 요구에 응해야 하는가? 대법원은 권리를 상실한 종원에게 시혜라도 베푸는 듯이 분묘기지권이라는 불완전한 권리로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분묘기지권은 남의 땅에 분묘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 공연하게 점유해 사용한 경우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여부와는 상관없이 성립하고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면 분묘를 개장할 필요가 없다. 

다만, 분묘기지권자라도 토지 소유자가 청구한 날부터 토지사용료를 내야 한다. 한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1년 1월 13일 이후에는 토지 소유자의 승낙이 없으면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 토지 소유자는 마음대로 분묘를 개장할 수 있는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토지 소유자 등은 그 분묘를 관할하는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야만 매장된 시신이나 유골을 개장할 수 있고, 허가를 받지 않고 개장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또한 형법도 전통문화 사상과 분묘에 대한 국민 법감정을 고려해 분묘발굴죄를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개인주의로 조상 숭배의 미풍양속이 퇴색해 가고 있기도 하지만, 사라진 종중 토지를 알게 된 젊은 세대는 좌절과 환멸로 벌초나 시제를 회피하면서 종중 해체 위기에 처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법원도 종중 재산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단순히 사인 간 문제로 치부하고 행정편의주의적 입장에서 피상적 해결을 할 것이 아니라 일제 잔재의 청산과 조상 숭배의 미풍양속을 유지·계승한다는 대국적 견지에서 실체와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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