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가 누구인가? 추사체로 유명한 그는 금석학을 학문적 반열에 올려놓은 19세기 동아시아 학예의 관문으로 평가된다. 서성(書聖) 왕희지가 한자의 문자성을 완성한 이라면, 추사 김정희는 한자 본래의 상형성을 회복한 인물이자 한글편지 40점을 남긴 인물이다. 200년 전을 살다간 김정희를 그래서 흔히 한국 최초의 한류(韓流)라고 말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서체별 주요 작품.
박물관에 전시된 서체별 주요 작품.

# 아키나오 선생의 추사 유물 기증

2006년 2월 2일 과천시청 대강당에서는 추사 김정희 자료 인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본인 연구자 후지츠카 아키나오(1912~2006)선생의 자료 기증을 전격 발표한 자리다. 

기증자는 추사 연구로는 처음 1936년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지츠카 치카시(1879~1948)의 아들이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이 서거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의 문은 그렇게 열렸다. 이후 소장 유물 1만5천여 점을 과천시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아키나오 선생은 그해 7월 2일 영면했다. 과천의 추사 재조명 사업의 시작은 그렇게 활짝 열렸다.

오늘날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과천시는 2004년부터 ‘추사글씨 탁본전’을 시작으로 ‘추사의 작은 글씨전’을 개최하고 완당전집 영인, 학술지 ‘추사연구’ 발간 등 추사 연구를 본격화했다. 

2006년 아키나오 선생의 유물 기증은 오늘날 추사박물관이 건립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과천시 추사박물관은  2009년 건립을 결정하고 건축·전시물설계를 거쳐 2011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3년 6월 3일(추사 생신일) 개관했다.

‘추사필담첩2-1809년 추사의 연행’ 특별기획전.
‘추사필담첩2-1809년 추사의 연행’ 특별기획전.

# 과천에 추사박물관이 있는 까닭은?

그럼 왜 과천시는 김정희를 기리는 추사박물관을 건립·운영할까? 뛰어난 예술가에게 말년은 예술이 최정점에 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말년양식’이라는 표현도 있다. 

추사 김정희의 삶은 24살 때 40일간의 북경 연행(燕行)과 55살 때부터 두 번의 유배생활(제주 서귀포, 함경도 북청)에 이은 말년 과천 시절로 요약된다. 북청 유배를 마치고 과천 주암동에 있던 과지초당(瓜地草堂)에 돌아온 건 1852년 10월 9일이었다. 이때부터 서거하기까지 만 4년간을 과천 사람으로 살다간 학자·예술가가 추사 김정희다. 

추사 가문의 별장 과지초당 터에 과천시는 과지초당을 2007년 복원하고, 추사박물관을 지어 운영 중이다. 과천에는 관악산 연주암과 온온사, 서울랜드, 현대미술관, 과학관이 있지만 단연 명물은 추사박물관이다. 주암동에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적 자산이다.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 상설전시실과 후지츠카 기증실

추사박물관 1층 로비 안내데스크 앞에는 대형 키오스크를 통해 추사박물관의 시설과 주요 소장 유물 정보, 교육 프로그램을 안내받고 온라인 전시(VR), 박물관 소개 영상 감상도 가능하다. 또한 전시실 곳곳에 위치한 스마트패드와 QR코드를 이용해 전시유물의 상세 정보도 살펴볼 수 있다.

추사박물관은 2층 추사의 생애실, 1층 추사의 학예실, 지하 1층 후지츠카 기증실과 기획전시실 순으로 구성됐다. 2층에 오르면 제자 소치 허련이 그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상반신 초상화가 가장 먼저 반긴다. 8살 때 생부에게 보낸 편지를 시작으로 한양 시절의 수학과 55세까지의 관직 생활, 그리고 8년 3개월간의 제주 유배 시절, 유배에서 돌아와 한강변에 살던 강상시절, 다시 2년간의 함경도 북청 유배시절, 마지막 과천시절로 삶의 흐름을 보게 된다. 추사의 마지막 글씨 판전과 추사의 제자 코너를 지나면 복도의 추사 인장 코너에서 다양한 추사의 인장을 만난다.

1층은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보는 곳인데, 북학파로 시작해 추사의 두 스승 옹방강과 완원의 작품, 청나라 학자가 김정희에게 보낸 그림과 글씨, 추사의 금석학과 불교, 추사체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후지츠카 기증실에서 아키나오 선생의 기증 경위와 기증 작품, 사진으로 남은 추사글씨를 만난다.

# ‘추사필담첩2-1809년 추사의 연행(燕行)’서 추사필담첩 만남

기획전시실은 1년에 2~3번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요즘은 12월 4일까지 ‘추사필담첩2-1809년 추사의 연행(燕行)’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추사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추사필담첩」은 김정희, 박제가, 유득공 등이 청나라 문인들과 직접 필담을 나눈 책으로 240면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대회에서는 "젊은 시절 김정희 관련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추사필담첩」 공개와 번역은 추사 연구를 한 단계 도약시킬 결정적 계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별전은 1부 북학파의 교유, 2부 청나라 학자들과의 필담과 교유, 3부 연행 관련 인물들의 그림과 글씨로 구성됐다. 2부에선 김정희의 ‘연행직전편지’, 옹방강과의 필담이 선보인다. 김정희는 필담에서 "제 이름은 정희이며 자(字)는 추사(秋史), 호는 보담재입니다. 지난해 시월 진사가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흔히 ‘추사’는 김정희의 호로 알려졌지만, 이번 필담첩의 공개로 ‘추사’는 호가 아닌 자(字)로 쓰이다가 점차 별호로 확대돼 갔다고 평가된다. 

이런 새로운 유물의 소개와 추사 콘텐츠 보급은 추사박물관이 성장해 온 비결이기도 하다.

추사의 선대가 살았던 충남 예산의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제주 추사관도 특징을 지닌 박물관이다. 예산은 농산물의 브랜드화로, 제주는 제주대로 관광지라는 특성이 있는 반면 과천은 엄정한 학예를 바탕으로 한 추사 콘텐츠 연구·보급에 주된 관심을 보인다는 차별성이 있다. 취재하면서 ‘따로 또는 같이’는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해 봤다.

이들 3개 박물관은 업무협약을 통해 유물 대여, 콘텐츠 교환, 상호 방문 등 추사 김정희 선생을 모시는 공립박물관으로서 튼실한 협력체계로 함께 나아간다. 

추사박물관의 특별기획전은 새로운 자료 발굴과 함께 학술적 성과를 인정받는다. 정벽 유최관 자료의 발굴과 전시, 중국 벼루작가 오입곡 특별전, 추사중국전, 추사한국전, 추사필담첩 특별전 들은 10년째인 추사박물관 이름에 걸맞은 전시로 평가된다.

‘추사의 연행과 필담’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추사의 연행과 필담’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 상설체험실과 세미나실에 그윽한 추사의 묵향

기획전시실을 지나 상설체험실의 디지털 코너에선 추사글씨 맞히기 디지털게임, 추사글씨·그림 그리기 체험이 가능하다. 그 옆에는 세한도, 세외선향난, 죽로지실 동판이 있어 탁본 체험도 할 수 있고, 붓으로 그림과 글씨를 쓰는 체험 코너는 학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복도에 마련된 투호는 가족방문객이 즐겨한다.

은은한 한지 등불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세미나실은 평소 관람객의 쉼터이자 학술대회나 강연 장소로 쓰인다. 추사박물관은 지난해부터 성인교육을 늘렸다. 추사아카데미, 추사사랑방이 그것이다. 추사아카데미는 연 5회 정도 관련 전문가가 월말께 강연 형식으로 추사와 관련된 주제의 강연을 하는데, 추사박물관 유튜브 채널에서 언제든지 시청 가능하다. 

또한 추사박물관은 지난해부터 추사금석문 집성 작업에 돌입했다. 추사서화파가 남긴 금석문의 종합적인 조사와 수집은 기대를 모은다. 5년간의 현황 조사와 탁본·번역, 해제를 통해 전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추사 김정희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추사박물관은 지난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추사 김정희’를 제작하고, 올해는 3차원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 플랫폼(제페토)를 활용한 추사 콘텐츠를 제작·운영 중이다. 이는 직접 관람이 어려운 관람객을 대상으로 추사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3차원에서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관내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펼치는 ‘찾아가는 박물관’을 통해 교육현장에서 추사를 만나는 기회를 늘려 간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횟수가 줄고 매체 지형도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추사박물관은 시민들이 추사 콘텐츠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만나는 기회가 되도록 애쓴다.

이병락 관장은 "내년 개관 10주년을 맞는 추사박물관은 그동안 축적한 고품격 추사 콘텐츠를 즐기고 체험하는 곳"이라며 "내년에는 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추사 애호가와 시민들이 공감하고 즐기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과천=이창현 기자 kgprs@kihoilbo.co.kr

사진= <추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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