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시인
최영희 시인

공개된 사진 몇 장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캄보디아 순방 중 빈민촌 환아를 안고 찍은 김건희 여사의 사진이다. 야 편에서는 ‘빈곤 포르노’라며 비난하고 여 편에서는 선행을 폄훼한다고 반발한다. 양자의 입장을 떠나 ‘빈곤 포르노’는 지식백과에도 등재된 공인된 공식 용어다. ‘빈곤 포르노’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홍보 전략이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이나 영상 등 미디어를 통해 모금활동을 펼치기 위한 홍보 기획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자선단체의 모금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사진 속 인물의 인권 논란과 윤리적 양심의 문제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논란 속 사진은 순수한 자선행위로 보여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허름한 차림에 땀방울 흘리며 봉사하는 모습도 아니고 연민과 사랑이 담긴 진정성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똑같은 장소에서 표정과 포즈를 달리해 모델 흉내를 내고 있다는 비평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사진은 연출 의도가 드러났다. 똑같은 장면에서 한 장의 사진은 얼굴을 비스듬히 돌려 눈을 내리깔고, 다른 한 장은 먼 하늘을 응시하며 모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가 봐도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 순수성이 결여된 의도된 기획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두세 개의 조명까지 설치했다는 논란도 가세했다. 선행을 한 것이 아니라 화보를 촬영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진 속 이미지 연출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상당히 부적절해 보인다.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이미지 연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선단체의 구호활동이 활발하던 시절 눈에 익은 풍경이다. 해외 유명 배우가 찍은 사진 속 표정과 포즈를 그대로 흉내 냈다. 증거로 제시된 유명 배우의 포즈와 똑같아 더욱 논란을 키웠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는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논란 속의 사진은 결코 선의의 자선행위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가 있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 그분은 진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공인으로서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사명의식도 보여진다. 소록도 나환자촌에서 봉사하는 모습이나 어려운 곳에 찾아가 봉사하는 모습은 진정성이 담겨 있다. 그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꾸밈없는 순수한 얼굴과 검소한 생활 속에서 근면하고 자비로운 진심이 우러나온다. 육영수 여사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의 자선행위에는 선의의 진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얀 목련꽃 향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치장하는 겉모습만 보고 느끼지 않는다. 얼마나 애민심이 담겨 있는지, 얼마나 진심이 담긴 봉사인지를 공감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육영수 여사가 국민 모두의 정서에 남아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난민 지역이나 아프리카 등 낙후된 지역에서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 빠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알리는 홍보사진에 왜 포르노라는 부정적 단어를 붙여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됐는지 생각해 보자. 많은 자선단체가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들 단체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 사람들은 모금한 돈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적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용한 그릇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금이나 자선활동에 동조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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