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한 시점보다 졸업해야 할 시점이 (아마도) 더 가까워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자주 둘러봤다. 커뮤니티에 작성된 글들을 읽다 보면 ‘스펙 평가’를 바라는 글을 자주 접하게 된다. 작성자는 자신의 나이, 학교, 학점, 수상 경력, 자격증 등을 쭉 나열한 뒤 "이 정도면 어떤가요?"라고 묻는다. 휘황찬란한 스펙을 구경하다 보면 저절로 나와 비교하게 된다. 남은 남, 나는 나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취업을 위한 스펙뿐만이 아니다. 익명의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평가해 주길 바라는 사람
수승화강. 직역하면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라는 뜻의 한의학 용어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바둑 용어로 등장했다. 대국할 때는 가슴은 뜨겁게 유지해 이기고자 하는 동력으로 삼되, 머리는 냉철하게 유지해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이긴다는 뜻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 역시 "Cool head, but warm heart’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이성과 감정의 조화는 이전부터 여러 차례 강조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머리뿐 아니라 가슴까지도 차가운 사람을 많이 접하게 되는 듯싶다. MZ세대가 열광하는 MBTI 성격 유형 검사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는다. 어딜 가든 "어제 우영우 봤냐?"는 질문을 받고, 유튜브를 포함한 온갖 동영상 플랫폼과 SNS에는 ‘우영우’ 클립이 돌아다닌다. 특징이 뚜렷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도 화제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빛내는 조연들부터 매회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카메오들까지, 등장인물을 파헤치는 재미도 톡톡하다. 그중에서도 ‘권민우’ 캐릭터는 각종 담론의 대상으로 떠오르기까지 하며 단순 재미를 느끼는 차원을 넘어 시청자들이
최근 몇 년간 MBTI 성격 유형 검사가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MBTI 검사는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로 사람의 성격을 총 16가지로 나눈다. 신뢰도가 낮은 검사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미 MBTI는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자신의 MBTI 성격 유형을 모르는 20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나 또한 MBTI를 좋아했다. 2년간 MBTI 척도로 주변인을 분석한 뒤 소논문을 작성했을 정도다. 타인의 성격 유형을 맞히면 그 사람을 잘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이해하는 작은 도구를 쥔 듯했다. 해석
나는 세 자매 중 장녀다. 각각 2살, 9살 터울의 동생들이 있다. 동생들에 비해 어른스럽지도 못하고 철없는 언니지만, 어찌 됐든 나는 첫째다. 철이 들어갈수록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언니가 되고 싶었다. 동생들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고됨을 몰랐으면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무신경한 말투가 싫었다. 상처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엄마와 많이 다퉜다. 몇 년을 반항해 왔기 때문에 이제 엄마는 내가 싫어할 만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생들에게는 그대로였다. 동생들은 나처럼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고, 엄마는
올해 초부터 유튜브 채널 ‘일프로TV’에 업로드되는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를 매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는 문헌학자인 김 박사가 답사와 문헌을 통해 수집한 자료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변천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도권의 새로운 지역을 알게 되기도 하고, 자주 지나다니던 곳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에 빠졌다. 이번 칼럼을 빌려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에서 소개된 내용 중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광주대단지 사건’을 소개하고 싶다.광주대단지 사건은 1968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이전 칼럼에서 철학 수업을 통해 배운 ‘무지의 지’를 언급했었다. 글의 논지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열린 자세로 타인의 생각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나와 다른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며 양다리를 걸치는 양시론이 바람직하다는 뜻이 아니다. 철학 수업에서 열린 자세만큼이나 강조됐던 개념은 ‘일관성’이다. 한 주제에 대해 존재하는 여러 철학자의 주장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모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인류애가 사라진다’는 표현을 종종 본다. 사람에 질리고 사람에 상처받아 그냥 ‘인류’란 종족이 싫어질 때 쓰는 말인 듯싶다. 나도 인류애가 사라지는 경험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진상 손님에게서 듣는 욕설, 조별 과제 중 숱하게 겪는 조원의 무응답, 길 한복판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모두 내 안에 얕게나마 존재하던 인류애를 사라지게 하는 것들이다. 적은 것은 극히 일부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던 것도 결국엔 사람 덕이었다.
최근 몇 년간 공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공정’이라는 단어는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도,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MZ세대가 특히 공정에 예민하다는 점도 기정사실이 됐다. 하지만 MZ세대가 아닌 사람들이 40대와 10대를 하나로 묶어 공정 담론을 펼치는 꼴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들은 대입 전쟁과 취업난에 더 열을 내는 청년들이 공정에 민감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정이란 무엇인가. 가장 최근 겪은 공정의 전쟁터는 대입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수시와 정시 중 무엇이 더 공정한지를 가리겠다는 성난 어른들이 매일같이 뉴스
악의를 가진 논쟁가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가 정의로운 논쟁가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논쟁에 죄의식이 없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옳은 일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비난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과 본인이 정의를 수호한다고 믿는 사람은 출발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강도 또한 달라진다. 물론 정의로운 이들은 의견을 나누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이들 덕분에 담론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본인이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과도하게 목소리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공자의 명언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앎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동서양의 두 성인은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무지의 지’를 역설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종종 "복수전공으로 왜 철학을 선택했어?"라는 질문을 듣곤 한다. 실용적 학문의 극치인 경영학 전공생이 어쩌다 철학을 복수전공으로 삼게 됐는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