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과 예술, 어떻게 다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예능(藝能)은 ‘연극이나 영화, 음악, 미술, 무용 등의 연예 분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정의돼 있고, 예술(藝術)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기술돼 있다. 이는 entertainment인 예능과 art라는 예술의 영어 단어로도 구분된다. 그렇다면 예능과 예술을 수업(授業)에 적용해 보자. 교사의 수업은 예능과 예술 어디에 위치할까? 예능 쪽에 치중하면 재미는 있겠지만 남는 것이 없고, 그렇
과거 인기 절정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었다.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원리다. 흔히 생각하는 ‘행복해서 웃는다’의 정반대 원리다. 이는 사람들의 몸과 정신은 서로 연계돼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즉, 인간의 몸과 정신은 하나라는 사실이다.이런 사실은 일찍이 깨달음을 얻었던 선각자들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강조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일화 한 토막에서도 말한다. 중국 유학길에 비를 피해 들어간 산속의 움막과 같은 곳에서 잠결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로 갈증을 풀었던
교육계에선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맞춰 학교 이전 등에 유연한 대응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모든 법정동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하나씩 있으면 지역민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하지만, 신도시 개발로 인구 유입과 원도심 공동화로 지역별 학령인구에 차이가 많아 결과적으로 학급당 학생 수 차이와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과별 자격증을 소지한 선생님이 있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일부 교과는 순회교사제를 운영해 상치 교사 배정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학급당 학생 수가 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어찌지 못하는 무력감에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노인들의 높은 자살률과 함께 특히 청년들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누가 살아갈 시간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에게 이런 고통과 죽음의 협주곡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를 사랑으로 보듬을 수는 없는가. 청년들이 흘리는 눈물은 다른 어떤 눈물보다도 고통 호르몬 분출이
매년 학년 말이 되면 반복되는 중·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에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처연하기 짝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오랜 교직생활을 해 온 입장에서 교장이 돼 중학교로 자리를 옮긴 것은 또 다른 경험이 됐다.하지만 고등학교나 중학교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상급 학교(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원서를 제출한 이후 교실의 모습은 상당히 닮아 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것은 학생 교육에의 책임 있는 모습이냐, 아니면 학생을 방치하는 모습이냐, 하는 것이다.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등학교는 수능이
최근 지방 초등학교 교사의 막말이 논란이 됐다. 교사가 사용하는 말과 대화 기술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연구자의 저서를 통해 밝혀져 왔다. 그중에서 캐롤 드웩(Carol Dweck)의 사고관점(mindset)에 관한 연구는 언어를 바꾸는 것에 관한 가장 유명한 연구로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성장관점(growth mindset)을 가진 사람은 근면과 노력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오래 일하고, 더욱 도전적인 과제를 떠맡으며, 더 높은 수준으로 성취한다. 반면에 고정관점(fixed mindset)을 가진
누구나 학창 시절에 접하는 영어 속담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를 기억할 것이다. 과거 어른들은 자녀 교육을 할 때마다 정직을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언급했다. 그 가운데 널리 인용되던 것이 바로 "입은 삐뚤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정직은 사람이 배워야 할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가치다.그런데 작금의 우리 주변은 어떤가? 그야말로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거짓말을 일삼는다.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학생들의 교권침해가 날로 심상치 않다. 매년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가 공개되는 즈음에는 온갖 인권 모독적이고 저급한 수준의 서술형 평가가 논란의 발단이 되고 있다. 2022학년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종 성희롱에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낯 뜨거운 글들이 교사들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며 더 이상 교육이랄 수 없는 현상들이 자행되고 있다. 이에 당장 유명무실한 교원능력개발평가를 폐지하라는 교원단체와 필터링 시스템을 강화해서 예방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마치 전선(戰線)에서 대치하는 듯하다. K-교사는 과연 어떤 존재의 의
누구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순간의 벼락공부, 주입식 암기 공부, 시험 위주의 공부, 소극적인 공부 방식 등 여러 가지 학습 방식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공부가 좋아서 즐겁게 배우며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학교에서는 희망고문처럼 들린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거의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왜 그럴까? 우리의 학교 공부는 대부분 시험의, 시험에 의한, 시험을 위한 공부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교 공부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과거나 현재나 우리 학생들의 특성
영원한 인류의 고전 「논어」에서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가르침을 전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군자는 그릇이다’라고 가정해보자. 이 말은 즉각적으로 군자가 항아리처럼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쉬운(fragile) 연약한 이미지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사전에 정의된 것처럼 군자는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다. 따라서 역의 명제는 군자의 고유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질감으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이 말은 일종의 휴머니즘(humanism)이 배어있는 문장이다. 보통
인류에게는 민족 또는 국가마다 독특한 인사 방식이 존재한다고 널리 알려졌다. 그 중 고대 로마에서는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인사법이 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당신’은 나와 관계된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자녀 교육에 집중해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보는 부모는 매우 기쁠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충만해 그가 무언가 성취했을 때 이를 지켜보는 연인의 마음 역시 그럴 것이다. 이는 교육적으로 무엇과 비유할 수 있을까? 제자가 일취월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스승은 청출어람의 보람을 만끽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오늘날 우리 주변은 온통 폭력에 노출돼 있다. 언론 매체에서는 끔찍한 스토킹 폭력을 포함한 대면 폭력은 물론 사이버 폭력에 관한 사건·사고 뉴스가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다. "죽을 줄 모르고 때렸다." 최근 세 살배기 의붓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의 말이다. 그 뿐이랴. 아홉 살 아이를 여행 가방에 가두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올라 밟은 계모도 있다. 참으로 멀쩡한 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폭력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모두 훈육(訓育)을 위한 것이었으며, 고의가 아니라고
‘나는 누구인가?’, ‘온전한 나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정체성 찾기에 관해 누구나 갖는 근본적인 물음이다.「정체성의 심리학」 저자인 박선웅 교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자신의 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고민했던 정체성 연구의 전문가이자 심리학과 교수다. 그렇다면 그가 연구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는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정도’라고 정의한다. 이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지키고자 하는 삶의 원칙일 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휴(休)테크’ 문화의 독보적 전문가로 알려진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유행어를 창조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렇게 인정받아야 하는 삶을 투쟁적으로 삽니다. 그런데 인정투쟁보다 더 쉬운 말이 있습니다. ‘남의 감탄’입니다. 인간은 감탄하고 감탄을 받으려고 살아요"라고 말했다.인정받고 싶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이 나에게 "와우~ 대단해요. 멋져요. 최고예요!"라고 말해 주길 바라는 심리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인정투쟁 욕구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우리’라
근래 웃픈 이야기 하나가 교사들 사이에 회자(膾炙)됐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요", "얘야, 그런데 너는 선생님이잖니?"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정신분석학자이자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그런데 학생 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할 동료 교사, 그들 간의 갈등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교사를 힘들게 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학교 현장에서 동료 교사 간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남산에 소나무는 잡아주지 않아도 반듯하게 자라고, 그것을 잘라서 화살로 쓰면 물소의 가죽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꼭 학문이 필요하겠는지요?" "화살에 깃을 꽂고 앞쪽에는 촉을 갈아서 박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깊이 박히겠는가" 이는 2천500년 전 제자(자로)와 스승(공자)이 나눈 공부에 관한 대화다. 결국 무사였던 자로는 공부를 통해 화살을 더 잘 쏠 수 있는 실무 능력 향상법을 듣고서 그 필요성에 수긍해 제자가 됐고, 죽을 때까지 충직하게 학문을 닦는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공부, 인생을 살면서 싫든 좋든
지난 대통령 선거, 이어진 지방선거 기간 동안 각 후보들은 부동산, 코로나로 어려운 소상공인 지원 대책, 그 외 각종 문제에 대한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작 국가 미래를 위한 교육 정책이나 비전은 그다지 보지 못했고, 그동안 활동하거나 활동 중인 정권 인수위원회에서도 교육 정책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오늘의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교육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다.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동안 코로나19로 학교는 교실에서 제대로 된 학습지도를 할 수 없었다. 지난 6월 14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1년 중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그는 역사에서 인도의 비폭력주의를 이끈 상징으로 추앙되고, ‘간디는 비폭력이다’라는 동격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왜 그럴까? 간디 자체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인고(忍苦)의 절제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 폭정 아래서도 비폭력주의로 일관한 그의 저항의식은 인도의 정신문화를 선도한 위인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속에서 흔히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이 곧 법이다"거나 "그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라고 표상으로 삼는다. 이 말은 그가 바
매년 고등학교는 ‘선행교육규제법’에 따라 학기별로 해당 학년의 교육과정 수준을 능가하는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교육청에 보고한다. 이를 위해 각급 학교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 및 학생에게 선행학습 금지에 따른 시행 사항을 공지하고, 더불어 가정에서의 협조를 요구한다. 학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교사들에게는 정기고사 문항 출제 시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이의 최종 준수 여부를 이원목적표에 서명해 제출하도록 한다. 고등학교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논·구술 시험에 고교교육과정을 뛰어넘는 문항을 출제해 고교교육
교사: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합니다.학부모:알아요. 하지만 아이가 저렇게 원하는데 어떡해요? 교사:그래도 숙려제를 통해 계속해서 상담을 하고 이해를 시켜야지요.학부모:아니에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기를 살려주겠어요.교사:나중에 흔들릴 때 왜 잡아주지 않았느냐고 아이가 원망해도 괜찮겠어요?학부모:할 수 없죠. 지금 아이에게 시달리는 것을 참을 수 없거든요(…). 이는 올해 초 숙려제도 없이 바로 자퇴를 하겠다는 고1 학부모와 담임교사가 나눈 대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년 초부터 신입생의 자퇴가 빈번했다. 코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