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숙한 허무주의자 소년 때부터 나에게 책 읽기는 거의 유일한 취미였고 관심 주제는 대체로 인생의 궁극적 질문에 관련된 것이었다. 고갱의 대작 그림에도 있고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벽에도 있는, 예술과 과학을 관통하는 그 궁극적 질문들이란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였다. 철학, 종교, 문학, 예술이 각자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기도 했고 중년 이후 읽어 온 과학책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보편성 있어 보이는 답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였다.

 인문학과 과학을 종합하여 이제 더이상 방황과 의심이 없는 답을 내 나름 정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답을 준 책 중 하나를 꼽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그가 제시한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의 모습은 관조적 삶이다. 그 삶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 내지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삶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주인공 조나단은 날개를 가진 새로 태어난 이상 날기의 끝을 보고자 했다. 이와 같이 인간 또한 타고난 이성의 힘을 극대화시켜 지성(철학적 지혜·지식·기예 등)의 탁월성과 품성(용기·절제·온화함 등)의 탁월성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른 나’(alter ego)인 친구 없는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할 정도로 우정(친애·우애)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신기하게도 공자의 생각과 거의 동일하다. 논어 첫 장에서 공자가 든 군자삼락 중 늘 배우고 익히는 삶은 지성의 탁월성 추구에 해당하고,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은 품성의 탁월성과 비슷하며, 먼 곳에서 온 친구를 기뻐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우정의 모습이다.

 한편, 이러한 관조적 삶은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공동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의 모습은 사회의 모습에 구속될 수 밖에 없기에 개인적 행복은 결국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다음으로 정치학을 쓴 이유다. 관조적 삶과 대비되는 삶의 유형으로서 활동적 삶 특히 정치적 삶을 들 수 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만행에 몸서리치며 일평생 전체주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수행한 한나 아렌트는 책 ‘인간의 조건’에서 개인적 가치 추구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공동체의 건전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활동적 삶을 살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관조적 삶과 정치적 삶은 배타적인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조적 삶을 정치적 삶보다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말하는 정치적 삶은 명예를 추구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삶에 가까운 반면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적 삶은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국가의 권력 남용이나 독재자의 출현을 억제할 수 있는 시민의 덕성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관조적 삶을 추구하면서 바람직한 공동체를 위해 정치적 삶을 살 수 있다. 관조적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개인은 공허한 군중의 일원일 뿐이며, 정치적 삶이 없는 공동체는 언제든지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로 돌변할 수 있으니 양자의 통합이 절실하다. 개인적 윤리학을 쓴 다음 정치학을 쓴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아렌트는 순서를 거꾸로 해서 인간의 조건 이후 개인적 윤리학이라 할 ‘정신의 삶’을 썼는데 순서에 관계없이 그들이 지향한 가치는 양자의 조화와 통합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본다.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국가에서 고대 폴리스적 정치 관여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건전한 보통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정치 관여는 모든 선거에서 투표권을 철저히 행사하고,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포퓰리스트를 견제하며, 예링이 설파한 바와 같이 부당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권리투쟁의 수고로움을 마다않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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