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잣집과 천막집을 전전하던 ‘소년 가장 흙수저’. 고난 속에서 꿈을 키웠던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삶의 승자’로 평가된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야간대를 다니며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학벌 편견이 깊었던 공직사회에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며 최고에 오른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이다.

굴곡진 인생 곳곳에서 이른바 ‘유쾌한 반란’을 일궈낸 김동연 당선자,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정치개혁’의 꿈을 안고 이제 1천400만 경기도민을 책임지는 경기지사로 다시 한 번 ‘반란’을 노린다.

# 소년가장이 된 ‘천막집’ 소년

1957년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난 김동연 당선자. 그는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광주대단지(현 성남시) 천막집에서 지내던 김동연 당선자(가운데).
광주대단지(현 성남시) 천막집에서 지내던 김동연 당선자(가운데).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살던 집에서 쫓기듯 나와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으로 이사했으나 이마저 도시정비 사업으로 헐리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시 대단지(현 성남시)로 강제 이주돼 한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다.

학업은커녕 끼니조차 걱정이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채석장 일과 산에서 나물을 캐 파는 일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었다. 

가난한 집안사정을 고려해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김 당선자는 고등학교 졸업도 전인 17살의 나이로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당시 은행은 많은 사람이 선망하던 직장으로 입행시험 경쟁이 치열했는데, 합격 소식을 전하던 날 그의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덩실 덩실 춤을 추셨다고 한다.

김 당선자는 "그날 이후 한 번도 어머니가 박수를 치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일생 중 어머니에게 가장 큰 행복을 드린 날이 아니었을까 한다고 회상했다.

# ‘고졸’의 벽 넘기 위한 ‘주경야독’…놓지 않은 학업의 열정으로 공직 입문

어렵사리 은행에 취업했지만 김 당선자는 "대학에 가지 못한 열등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주저 앉을 수 없다는 절박함 등이 교차하며 자신을 괴롭혔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그렇게 직장생활과 대학입시 준비 병행한 끝에 야간대학생이 된 그는 어느 날 은행 독신자 합숙소에서 옆 방 선배의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수험생을 위한 잡지를 발견, 합격기를 읽고는 고시공부라는 새 꿈을 꾸게 된다.

배우자 장우영 씨와 김동연 당선자.
배우자 장우영 씨와 김동연 당선자.

이후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대학생, 더 깊은 밤에는 고시 수험생으로 ‘주경야독’에 전념한 그는 만 25살이 되던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 제6회 입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거뒀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학벌 편견’은 김 당선자에 또 다른 벽이 됐다. 그를 향해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애들도 시험 붙어 여기까지 오네"라는,한 중참 사무관의 말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일하며 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들어가 석사학위 공부를 병행했고, 몇 년의 고생 끝에 미국 미시간 대학교 국비유학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1993년 3년 9개월 최단 기간으로 미시간대 공공정책학 석·박사를 취득했고,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세계은행(IBRD) 선임정책관 등을 지낸 후 2005년 기획예산처로 돌아와 재정정책기획관 등을 지냈다.

# 나라살림 책임지는 ‘경제부총리’까지…삶의 가장 큰 고통도

기획예산처에서 일하며 참여정부가 발표한 국정 마스터 플랜 ‘비전 2030’을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2012년 기획재정부 제2차관 자리에까지 올라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 시기 삶은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을 안겨줬다. 2013년 10월 병마와 싸우던 큰 아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했다. 김 당선자가 큰 아들의 발인을 마치던 날 오후 사무실에 출근해 국무조정실이 만든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훗날 직원들에 보낸 이메일에서 "(큰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난 것 같다"는 개인적 아픔을 토로키도 했다.

세상을 먼저 떠난 큰 아들과 미시간 교수시절.
세상을 먼저 떠난 큰 아들과 미시간 교수시절.

2014년 7월 국무조정실장 맡고 있던 그는 사의를 표했다. 큰 아들을 잃은 지 9개월 만이었다. 이후 ‘전관예우’를 노리면 대형 로펌들의 제의를 피하기 위해 6개월 간 양평에 칩거하기도 했다.

2015년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돌아온 김 당선자는 해외연수 장학금 제도인 ‘애프터유(After You)프로그램’, ‘총장 Book 릴레이’, ‘총장 진로 멘토링’ 등을 신설, ‘갓동연’이라고 불리우며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그는 경제부총리 제의를 받았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 당시 청와대는 "유능한 경제 전문가", "소년가장 출신으로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경제사령탑"이라 그를 평가했다.

김 당선자는 경제부총리 재임 중 3%대의 경제성장률 회복과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고, 대외적으로도 한·중 통화스왑을 연장시키고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는 등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 한국 사회 기득권 타파를 위해 정치 무대에 오르다

2018년 경제부총리직을 마친 그는 4개월 만에 34년 간의 공직 생활과 1년 6개월 간의 경제부총리직을 모두 내려놨다.

끊임 없이 들어오는 연봉 10억∼20억 원 대 전관예우직, 대기업 등의 제의를 모두 만류한 김 당선자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아내와 함께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을 만나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삶의 어려움은 ‘기회’와 연결돼 있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김해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난 김동연 당선자
김해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난 김동연 당선자

주어진 기회조차 불공평 한 기득권 중심의 승자 독식 구조, 그는 대한민국의 이러한 핵심 문제를 타파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대한민국을 ‘기회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고, 지난해 10월 ‘새로운 물결’을 창당했다. 

대선 막판 ‘기득권 깨기’와 ‘정치 개혁’의 신속한 추진을 명분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룬 김 당선자는 비록 완주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정치인으로서의 무게감을 확고하게 다졌다.

올 3월 대한민국 최고 광역지자체인 ‘경기도를 바꿔,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목표로 6·1 지방선거 무대에 오른 그는 합당을 통해 민주당의 경기지사 후보로 경기도민들 앞에 섰다.

상반된 삶의 이력을 가진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와 선거기간 내내 예측불허 박빙 경쟁을 펼친 김 당선자는 "경기도, 대한민국을 바꿀 기회를 달라"고 외쳤고, 실천을 약속했다. 

이제 지방선거를 통해 도민들은 그가 말한 ‘변화’와 ‘개혁’을 민선 8기 도정에서 펼치라 명했다. 새 도정을 책임질 김 당선자는 "경기도부터 새롭게 바꾸는데 내 모든 것을 걸고자 한다"는 다짐을 밝혔다.

 남궁진 기자 why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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