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 지난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국가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향토역사도 매한가지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국사의 이면에는 소소하지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되는 향토사가 자리잡는다. 향토사를 알면 지역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배가된다. 

여기 지난 28년간 지역의 잊혀진 역사적 유물과 유적·사료 등을 묵묵히 발굴하고 연구해 온 향토사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동두천향토사료관 관장이자 동두천지역 역사지킴이, 이명수(73)향토사학자다.

# 뜻하지 않은 향토사학자의 길

그는 대학에서 따로 역사를 공부하지도 않았다. 1996년 동두천문화원 부원장을 맡게 되면서 의정부·양주·포천·고양·파주·연천 등 인근 타 시·군은 향토유적과 유물이 넘쳐나는데 왜 동두천은 빈약한지 고심하던 중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관내 10개 마을의 80세 이상 촌로들을 찾아다니며 마을 역사 기록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당시 놀라웠던 사실은 향토유적과 유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잊혀진 채 묻혔다는 점이었다.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도 향토문화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던 셈이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잊혀진 지역사(향토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향토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지역의 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을 지난하고도 지난한 일이다. 때로는 구전된 작은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발굴 작업에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낡은 물건이나 오랜 흔적, 인물의 발자취를 찾아 박물관 등을 방문해 사료를 모으기도 했다.

# 역사적 유물을 지역경제 발전의 마중물로

모든 역사는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의 삶 속에서 얻어지는 교훈을 통해 미래를 밝힌다. 동두천이 겪는 현재의 어려움은 모두 과거에서 비롯됐다. 지난날을 부정하면서 미래의 발전을 꾀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역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관내에 역사적 의미가 담긴 유적지가 산재했음에도 동두천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유적의 복원 작업과 홍보가 부족한 탓이라고 본다.

동두천은 두드림(Do!dream)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수도권의 일일 관광권으로 각광받을 만한 지역이다. 그는 "동두천은 특히, 경원선 전철과 함께 장차 남북 교류 시대에 대비한 경기북부의 거점도시로서 그동안 역대 시장들이 문화유적 발굴·보존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역사의 도시로서 동반성장이 가능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향토사학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는 유물과 유적들을 어느 정도 갖추고 보존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동두천에서 발굴·복원한 역사적 유물들을 관광자원화하고 상품화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마중물로 활용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미2사단 캠프 케이시 내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
미2사단 캠프 케이시 내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

# 백백교 연구 등 논문집 19편 발간

이명수 향토사학자는 동두천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총 19편의 논문집을 발간했다. 백백교(白白敎) 연구, 윤비(尹妃)의 생애와 삼라만상, 어유소 장군(魚有沼 將軍)과 문화유적,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소요산 별궁(別宮), 동두천 삼충단(三忠壇)과 백촌(白村) 김문기, 조선중기 신용개의 정치활동, 화곡(禾谷) 정사호(鄭賜湖)의 조선왕조실록, 사패전(賜牌田)이 백성(百姓)에 미치는 영향력 등이 그의 논문집이다.

특히 백촌 김문기는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 잡혀 죽임을 당한 여섯 명의 충신 성삼문(成三問:1418~1456), 하위지(河緯地:1387~1456), 이개(李塏:1417~56), 유성원(柳誠源:?~1456), 박팽년(朴彭年:1417~56), 유응부(兪應孚:?~1456) 등과 더불어 훗날 역사적 사실로 인정돼 등재된 ‘사칠신(死七臣)’ 중 한 명이다.

# 동두천시향토사료관

동두천시향토사료관은 현재 선조들이 사용한 생활용품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여온 미군 관련 근대유물 등 500여 점을 전시 중이다.

미군 관련 유물들은 전후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이르기까지 미군이 사용해 왔던 용품들로, 대부분의 유물이 소모성 물품이어서 현재 미국 본토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귀중품이다.

그는 현재 전시 중인 유물들을 수십 년간 사비를 들여 개인적으로 모았지만, 70여 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미군과 함께 성장해 온 동두천시의 특징을 살려 미군 전쟁기념관을 만들고 싶은 소망을 피력했다. 지역의 특색을 살려 미군 전쟁기념관을 만든다면 보산동 관광특구, 캠프 케이시와 어우러진 또 하나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생산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고 이긍래 선생과 우병창 선생을 역사적 인물로

그는 향토사를 발굴·연구하는 자체가 개인적으로 매우 보람되고 즐겁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병활동에 헌신한 고(故) 이긍래 선생과 고 우병창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역사적인 평가를 받도록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일종의 ‘사건’으로 기억한다. 

두 선생은 모두 동두천에서 출생해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검거돼 각각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우병창 선생은 2014년, 이긍래 선생은 2019년 독립유공자로 등재됐고 후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 발굴·보존이 시급한 유산들

동두천시민들도 존재를 잘 모르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 미2사단 캠프 케이시 내에 있다. 고려시대 건립됐다고 추정되는 오층석탑이 주인공이다.

오층석탑은 조선 전기에 건립돼 현재 보물 1808호로 지정된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과 유사한 모양으로, 2중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세웠고 옥개석이 투박한 다층 양식이어서 건립 시기가 수종사 오층석탑보다 앞선 고려 말로 추정돼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여겨진다.

1963년 크리스마스 날을 기해 당시 미7사단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루이스 장 목사가 한미 우호에 대한 미군의 감사 표시로 미7사단장 데이비드 그레이스 소장에게 오층석탑을 기증했다. 당시 루이스 장 목사가 서울에 자신이 세운 교회 자리에 있던 석탑을 옮겨왔는데, 1960년대 초 어수선한 상황과 문화재 가치에 대한 무지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이명수 향토사학자는 "지금이라도 동두천시가 오층석탑에 대한 문화적 고증을 거쳐 미군과 협의를 통해 환원받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조선 27대 왕 순종황제의 순종효황후 윤씨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평윤씨 집성촌이었던 동점마을은 윤후(尹后)가 나고 자란 곳으로, 13세 나이에 동궁계비로 책봉돼 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특히 경술국치 때 일제가 조약에 서명 날인을 강요하자 윤후는 옥새를 치맛속에 숨기고 버티다가 백부 윤덕영에게 강탈 당해 나라를 잃게 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는 국권을 회복하려고 불교에 귀의해 한평생을 빌고 빌었던 윤후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영혼의 안식처인 생가를 복원해 오대산 백운사에 모셔진 위패를 옮겨와 제위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윤후의 생가터에는 음식점이 운영 중이다. 

이 밖에도 태조 이성계 우물터, 어유소 생가, 호적의 묘, 소요산 산성과 보루, 백백교 천원금강, 동점마을 구리광산, 유황광산 등은 발굴·보존이 시급한 유산들이다.

동두천시향토사료관 전시관. 선조들이 사용한 생활용품, 미군 관련 근대유물 등 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동두천시향토사료관 전시관. 선조들이 사용한 생활용품, 미군 관련 근대유물 등 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 잘못된 고증 바로잡아야 

이명수 향토사학자처럼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어려움보다 지역 문화유적들이 방치·훼손되거나 진의가 왜곡돼 잘못 알려지는 사례를 보면 학자로서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유적이지만 매몰돼 사라진 어수정, 수해로 제자리를 이탈해 옮겨진 뒤 부실하게 복구된 동점마을 암각문, 마차산 정상 표지석 오표기와 사패지 경계석 등은 잘못 알려진 유적이다.

특히 향토유적 제1호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전시 중인 사패지 경계석은 역사 고증 문헌에도 없는 명칭이다. 그는 "임금이 사패를 하사할 때는 왕의 문서인 교지에 의해 땅과 노비를 왕족이나 공신들에게 나눠 준다. 결코 왕이 문인석을 내려주는 예는 없다"며 "이처럼 잘못된 부분들은 올바르게 돌려놔야 한다"고 했다. 

이명수 향토사학자는 "후손들을 위해 많은 문화유적지를 발굴하고 복원해 문화도시로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며 "문화유산을 더욱 보강하고 새로운 자원 개발과 홍보에도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게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역사적 유물을 관광자원화하는 일은 후손들 모두에게 맡겨진 과제다. 

동두천=유정훈 기자 nkyo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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