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인류의 최대 덕목은 ‘진실을 추구·옹호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정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실을 추구·옹호하다가 큰 위험과 희생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언론인들이 더 위험해졌다"며 세계 언론 자유 수준에 우려를 표했다. 유네스코는 "2006~2020년 사이 전 세계에서 1천200명 이상의 언론인이 살해됐으며, 이들 사건 10건 중 9건이 사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고 했다.

2021년 노벨평화상이 반 세기여 만에 언론계에 돌아갔다. 1953년 나치 집권 시절 독일의 비밀 재무장을 폭로했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각국의 상황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10월 8일(현지시간)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두 명의 언론인을 지명했다. 필리핀 탐사보도 전문매체 ‘래플러’의 공동설립자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이다. 노벨위원회는 "레사와 무라토프는 필리핀과 러시아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기 있는 싸움을 벌였다"며 "이들은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점점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와 같은 이상을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을 대표한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 두 사람의 수상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진실 추구·옹호’를 위해 노력하는 국내외 많은 언론인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진실 추구·옹호’는 언론인뿐 아니라 모든 직업인이 존중해야 할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특히 학자, 교육자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학문과 교육의 세계는 ‘진리의 탐구와 전수’를 목표로 하는데, ‘진리’란 ‘진실한 이론 내지 원리’를 뜻한다. 만일 학계·교육계에 거짓 경력·실적의 학자와 교육자가 활개치고, 거짓 이론과 원리가 횡행한다면 이는 ‘썩은 물’이 온 사회를 뒤덮는 것과 같다. 이런 사회는 필경 악취 속에 병들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법조인에게 있어서도 ‘진실 추구·옹호’는 엄중한 사명이다. 그러나 ‘진실 발견’은 법정에서조차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원고든 피고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원로 법관은 "법관 생활로 얻은 직업병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재판을 통해 ‘진실 발견’을 하는 데 법적·절차적 제약이 따르기도 한다. 특히 민사재판의 경우에는 당사자주의·변론주의에 따라 법관이 ‘당사자가 주장하는 범위 내에서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직권으로 진실을 발견하는 데 제약이 있다(형식적 사실주의). 그러나 형사재판의 경우에는 법관이 직권을 통해서라도 사안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므로 ‘실체적 진실(實體的 眞實)’의 발견은 형사소송의 최고의 목표이고 가장 중요한 지도이념이 된다(실체적 진실주의). 물론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급급해 고문 등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검찰·정치인들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각종 사안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국민들은 냉소적·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지난 12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뽑았다. 고양이 ‘묘’, 쥐 ‘서’, 함께할 ‘동’, 있을 ‘처’라는 네 자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됐다’는 뜻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깐부’가 됐다는 말이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언론인·학자·교육자·법조인들이 악(거짓)의 세력과 ‘깐부’가 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서 가짜와 사이비를 가려내는 대책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옥석을 구분하지 않으면 ‘아사리판’이 될 것이고,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2021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각종 사건·사고의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세월의 진토 속에 묻혀 망각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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