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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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욕구의 빛과 그림자
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1.30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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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념의 역사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고,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인류가 모색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체제임을 단언한 책이다. 주목할 점은 저자가 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호출한 개념이다. 그는 플라톤의 튀모스(Thymos)에 주목한다. 흔히 기개로 번역되는 튀모스는 이성적 사유를 현실에 옮겨놓는 추진력과 같은 것으로 저자는 이 튀모스 개념을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구와 연결시켜 서양 지성사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고찰한다. 

 결국 그는 타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가 가장 합리적으로 수용했다는 것, 즉, 우월감에 대한 열정이 사회발전의 긍정적 모티브로 작동했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러나 우려할 점은 이러한 인정욕구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지나치게 과열된 상태로 전이될 때 나타난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100% 타인 의존적일 때, 그 인생은 철저하게 타인의 욕망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러한 ‘차이’와 ‘비교’에 대한 과열된 욕망은 대다수 사람들을 불행의 상태로 몰고 가는 일차적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청년세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에 뜻을 두지만 대다수가 ‘공부’ 때문에 불행을 경험하는 사회,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만 배움의 탁월성이 드러나는 사회 속에서 대다수 청년들은 인정투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과열된 인정욕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학에서 인성교육은 더욱 강조돼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 출발은 자신의 욕망을 건강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장’으로 기억하는 대다수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의 인성교육이 필요할까. 참고로 하버드대학은 2016년부터 ‘품성과 태도의 교육’을 대학 교육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학문중심 교육과정에서 현장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전환한 바 있다. 

 하버드대학의 교양교육 목적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학생들이 시민으로서 도덕적으로 관여하는 삶을 살도록 준비시키는 것’으로 설정된 것은 점점 더 상호연관성을 지니는 세계에서 미래세대가 어떤 방식의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다. 교양교육에서 도덕적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교육의 실천적 면모가 정교한 이론적 작업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버드 교양교육의 4가지 원칙은 ‘유덕한 행위의 본질에 대해, 사회와 전통의 정체성에 대해, 도덕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 과학과 기술의 변화에 대해 다양한 문제 제기와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도덕적 동기화(moral motivation)에 앞서 도덕적 정당화(moral justification)를 위한 치열한 탐구만이 미래의 험난한 삶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통찰이 엿보인다. 특정 가치에 대한 일방적인 전수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체계를 정당화하는 조건과 과정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일종의 과정중심 교육인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을 균형 잡힌 인격체, 자유로운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인성교육은 이러한 튼실한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 막상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장애물이 되는 현실,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의 인재보다는 짐이 된다는 무력감이 팽배한 현실 앞에서 대학이 청년세대를 위해 해야 할 것은 공존의 가치가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일이다. ‘명륜(明倫)’이란 단어가 있다. ‘사람의 관계를 밝히다’를 의미하는 이 단어의 대표적 용례는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대표하는 교실 이름, 즉 명륜당(明倫堂)에서 찾을 수 있다. 배움의 궁극적 목적이 개인의 탁월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 있다는 선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명륜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는 것, 이것이 ‘교육공동체의 선(善)을 도모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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