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27일 전남 담양 창평에서 의병을 일으켜 무장항쟁을 벌이다 지리산 연곡사에서 전사, 순국한 고광순(1848~1907) 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의병장의 후손인 선생은 어려서부터 의로웠고, 자라서는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고 과거에도 응시했으나 비리와 부정에 실망해 낙향해 때를 기다렸다.
 
1895년 을미사변과 1905년 을사늑약 직후 각각 의병을 규합해 일제에 항거했으나 실패했고, 1907년 광무황제로부터 의병을 독려하는 `애통조'를 받고 일제를 물리칠 것을 맹세하고 1907년 1월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추대됐다.
 
의병장이 된 선생은 양회일, 기삼연 선생 등과 함께 창평, 능주, 동복 등지를 활동무대로 삼아 남원과 화순, 능주, 화개 전투에서 승전을 했으며, `호남의병의 선구자', `고충신'으로 명성을 날렸다.
 
1907년 9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던 선생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피아골 계곡의 연곡사를 본영으로 삼아 `불원복' 태극기를 달고 장기항전 태세를 갖췄다.
 
`불원복'은 주역 64괘중 음속에서 양이 처음으로 돌아오는 복괘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광복이 머지 않았다'는 의지를 내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이 영호남 의병의 활동 본거지가 되자 일제는 대대적인 탄압작전에 돌입, 그 해 10월 연곡사를 포위, 공격했으며 이에 맞서 선생은 결사항전을 하다 25∼26명의 의병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했다. 선생의 나이 60세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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