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졸업시즌이다. 올 해는 친척이나 지인의 자녀들이 유독 졸업하는 학생이 많아 2월을 분주하게 보냈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졸업이든 졸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문을 통과했다는 마침이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지 않고 단계를 밟아나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끔은 지친 당나귀 같아 힘겨웠고 가끔은 우아한 백조처럼 날아올랐던 시간들이 졸업장을 만들었다. 진이 빠질 때까지 책을 파면서 잔소리와 격려를 짜증과 위안으로 받아들인 수험생에겐 직설적으로 와 닿는 감정기복이다. 정작 결과는 애쓰고 노력한 것에 비하면 만족도가 떨어져 허탈하고 속이 상한다.
지인의 딸이 최고의 대학에 1차 합격을 했다. 교문 위에 현수막이 걸리고 그 현수막에 영예로운 이름을 올려 부러움을 샀다. 최종 합격이 아닌데도 홍보를 위한 학교의 조급한 처사가 아이를 졸업식에 불참하게 만들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이는 졸업식 참석을 거부해 갈등을 빚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아이의 마음이 어떠한지 헤아리기보다 ‘더 잘했으면 합격했지 무조건 너 탓이다’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먹먹했을 것이고 선생님이나 부모는 독불장군식의 아집이 부담스러워 애를 나무랐다. 결국 아이의 엄마가 졸업식 날 딸과 함께 겨울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가는 것으로 해결을 봤다. 모녀는 가고오는 여행길에서 내상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아이는 재도전을 위한 길을 선택했고 다시 수험생이 됐다. 18살 딸을 아이로만 여겨 자신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한사코 옳다고 잡아끈 볼썽사나운 엄마였다고 지인은 눈물을 보였다.

졸업은 낯익음과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체화된 내 껍질을 깨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통과의례다. 호불호나 유무익을 따지는 것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유대관계를 이어왔던 것들과의 이별이 쉽지 않다.
곧 3월이다. 입학식이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이 졸업과 입학을 반복하는 게 우리 삶이 아닐까. 학업이든 세상살이든 정신적 성찰이든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책임과 노력과 갈등의 시간이 얽혀있고 이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숙해지려고 애쓰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졸업을 했으니 입학은 필수다. 학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삶의 주기다. 사람들은 결과와 선택에 따라 마음이 헛헛해지기도 하고 들뜨기도 하면서 세상을 건너고 있다.
중학생이 되는 조카는 수심에 잠겨 왕따와 폭력으로 끔찍한 사건이 터지는 학교를 불안해한다. 일부가 전체는 아니지만 막상 아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나 보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큰 조카는 여고생이 된다. 교복치마의 길이와 머리 모양에 관심이 많다. 대학 졸업으로 사회인이 되는 지인의 아들은 연봉에 대해 푸념한다. 만족할 만한 보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환절기, 졸업과 입학을 짧은 시간차를 두고 경험하고 경험할 아이들이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돋움을 해주고 싶다. 어정쩡한 계절만큼 어설픈 현재가 조금씩 단단해져 갈 것이란 믿음에 신뢰가 간다.
졸업과 입학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평소보다 떠들썩한 행사다.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시간의 점이 졸업과 입학이다. 세상의 등뼈를 거슬러 오르는 동안 여러 역을 만나 내리고 타면서 새로운 경험과 근사한 풍경을 기대한다. 기대의 설렘이 지루한 하품이 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은 여건으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지나온 역이 많아질수록 단정해지려고 애쓴 보람은 있다. 바람직한 것에 대한 안목이 생겨나 인내와 위엄의 나이테가 만들어지면서 조화로운 색깔로 섬세해져 갈 것이다. 때마다 겪어왔을 통과의례는 세월 지나 보면 꽤 근사하게 느껴진다. 체에 걸러진 고운 가루처럼 불순물이 세월 속에 걸러진 탓인지 흑백사진처럼 부드럽게 회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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