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 지난주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수십 종의 초콜릿 상품을 진열해 놓고 홍보를 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초콜릿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매장을 기웃거리며 깜찍하거나 로맨틱하거나 심지어 엽기적이기까지 한 다양한 초콜릿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 수제 초콜릿부터 몇백 원짜리 상품까지, 질도 모양도 포장도 천차만별이다.

일본 모토고미 제과 회사의 상술에 줏대 없이 휘말려 국적불명의 기념일에 들썩인다고 비판도 많았다. 근래에는 맹목적인 과열이 조금씩 식으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태국에서는 이날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밤 10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를 내린다고 한다. 마약이나 음주에 노출되지 못하게 차단하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일 것이다. 무질서를 낭만으로 착각하는 오류가 만들어낼 결과는 심각할 것이고 들뜬 청춘들은 본질이 아닌 정크(junk) 문화로 이날을 즐기려고 한다.

세상만물에는 모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이 초콜릿도 밸런타인데이도 양면이 있다. 초콜릿에는 피부의 노화를 촉진시키고 탄력을 떨어뜨리는 당 성분이 첨가제로 들어있고 초콜릿속의 카카오 성분은 거꾸로 노화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칼슘이나 카테킨 타우린 같은 성분은 피로회복에도 집중력에도 당뇨와 암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하니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먹으면 동안 미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깐이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원래의 초콜릿 원료인 순수한 카카오에는 최종당화산물이 없다고 하니 사람도 어린 시절의 순정한 마음이 부대끼고 살면서 변성이 되는 것 같다.

여러 설이 있는 밸런타인데이의 유래가 얼마만큼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전해 내려왔는지는 측정하기 힘들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해 이날을 유익한 재미로 즐기는 하루로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젊은이 문화에 주책없이 휩쓸릴 일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정서가 메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감동이나 감격하는 일이 별로 없어 매사가 무덤덤하다. 법정스님은 ‘무릇 사람이라면 감성이 마모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해야한다.’고 가르침을 주셨다. 감동을 주고받고 공감하고 감탄하는 것은 동심의 마음이라 티끌이 없다하신 말씀을 새기면서 새삼 밸런타인데이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누구를 이성으로 사랑해 초콜릿선물상자를 포장할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문득 달콤함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떠올려 보면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다. 참 감사할 일이다. 내가 정도를 걸으며 살아왔으니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선한 인연으로 다가와 따뜻하게 손 잡아준 분들이 고맙다. 달곰쌉쌀한 초콜릿의 맛 속엔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공감하고 소통하며 배려했던 결들이 쌓여 고운 나이테를 만들었을 것이고 거기엔 내 몫보다 더 많은 주위 분들의 사랑이 녹아 있다.

맞장구쳐주고 재미있어 하고 호기심과 기대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을 가진 동심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체면이나 권위의식 같은 갑옷을 벗어서 나를 내려놓고 싶다. 똑 부러진 성격도 달변가도 아니니 좀 어버버한 사람으로 보인들 대수인가. 더러 실수도 하지만 상처주지 않고 마음 나누며 오랜 시간을 쌓아 왔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쑥스러워 아니면 체면 때문에 못 했던 초콜릿 선물을 밸런타인데이를 핑계삼아 드리고 싶다.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진한 삶의 애환을 공감하며 나누워 왔던 감사의 표시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달콤함이 기분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초콜릿 포장을 정성껏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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