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술이 얼큰하게 취해오신 아버지에게 "어디서 이렇게 술을 또 드셨수"하고 어머니가 묻는다.

“신포동.”

당연하다는 듯한 아버지 대답만큼이나 1980년 대 그 시절 인천시 중구 신포동은 약주를 사랑하던 문인들과 화백들, 시장통의 일꾼들과 노동자들, 흔한 넥타이부대까지.

당시로는 가장 번화했을 그 신포동 속 선술집을 찾은 시민들은 함께 어울리며 약주에 고단한 하루와 삶의 회한을 또는 즐거움과 슬픔을 담아냈다.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받아주던 선술집들은 신포동의 한 모습이자 안주 먹을 돈으로 차라리 소주를 한 잔 더하겠다는 그들의 술추렴이 안쓰러웠는지 주인 아줌마가 더운 감자국 한 사발을 무상으로 올려주는 그 집.

가게문을 누군가가 들어서면 제대로 된 인사 몇 마디도 없이 그저 건어 한 접시에 약주 한 병을 올려놓는 늙은 주인 아저씨가 있던 그 집.

더 이상 술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주등(酒燈)이 달려있지도, 경쟁하듯 구수하고 비린 냄새 피워 올리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이제 몰락에 가까운 신포동은 그래도 옛 기억 한자락을 담아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선술집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신포주점

신포시장의 한가운데 두 개의 큰 골목을 잇는 작은 연결통로에 위치한 '신포주점'은 허술해 보이는 작은 문 안에 고작 테이블이 너댓개밖에 안되는 작은 선술집이다.

한때 '마냥집', '미미집' 등과 더불어 문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이 인생과 예술을 논했다던 그 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허름한 작은 술집에 불과하다.

낙서와 손때로 얼룩진 벽면과 대충 아무렇게나 놓이는 술잔과 안주, 괜히 주인 아줌마에게 농을 던지는 어느 취객의 높은 언성도 정겹다.

최병구(崔炳九) 시인의 뼈 가루가 바로 이곳 신포주점을 비롯해 지금은 문을 닫고 없는 '백항아리' 문지방과 '마냥집' 등지에 뿌려졌다고 하는 이야기는 아직 옅은 숨을 쉬듯 근근히 문을 여는 '신포주점'이 예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던 선술집 중 하나였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당시 몇백 원짜리 약주를 놓고 밤을 새며 문학과 예술과 인생을 논했을 것인데 싼 술상 앞에서 비싼 대화를 나눴을 그 시절의 추억은 이따금씩 찾는 문인들과 그 뒤를 따르고 싶은 제자, 후배들에게 이어져 지금도 가늘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젊고 날렵해 보이는 서빙맨도 없고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버무려진 멋들어진 안주도 없지만 서민의 술집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듯 신포주점의 문지방은 지금도 조금씩 세월로 닳고 있다.

■염염집, 마냥집

그때는 도수가 30도를 넘었을 소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가 나오던 이 선술집들은 과거의 손맛이 사라졌다며 아쉬워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제쳐두고라도 이름만이라도 명맥을 유지해주고 있는 것에 고마움마저 느껴진다.

이 집들이 언제 생겼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주인장에게 "대충 아무거나 줘요"하고 말해놓으면 약주와 생선 토막이 넣어진 얼큰한 찌개 한 사발을 내놓는 주객(主客)간의 공감, 바로 그 선술집만의 매력이 그리워졌을 때 아직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는 점이다.

인천의 주당들은 술맛을 제대로 알았나 보다.

구수한 박대와 찌개의 얼큰함. 그리고 소주 한 잔.

주인장의 다소 퉁명스러움 속에서 보이는 웃음 만큼, 조금은 누추해 보이지만 고향집 같은 편안한 술자리를 원한다면 지금 신포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된다.


  ■이제는 신포동에서 사라진 바로 그 집들

지난 1985년 인천시청이 중구에서 남동구 신청사로 옮긴 이후가 그 시작일까. 아니면 기억하기도 싫은 인천시 중구 인현동 호프집 화재참사가 그 시발점이 된 것일까.

원인이 어쨌든 동인천 일대의 상권을 비롯해 신포동, 신포시장의 상권은 이제 과거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인천에서 가장 누추한 선술집이면서도 매일 낮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인천 문화의 가장 은성(殷盛)한 시절을 누렸던 '백항아리집', 바로 그 집의 퇴장이 신포동의 몰락을 불렀는지 모른다고 김윤식(인천문인협회장) 시인은 회고한다.

유명했던 해장국집 '답동관'이 사라졌고 주머니 가벼운 이들이 대포 한 잔 걸치러 가던 '충남집', '미미집'이 사라졌다.

설렁탕집 '금화식당', 화가들 미술전이나 시화전 단골 전시장이었던 '은성다방' 등도 하나씩 문을 닫고 말았다.

아쉽지만 과거 신포동을 사랑했던 선술집의 주객들 역시 이제 거의 찾기 힘들어졌다.

신포시장을 누볐다는 피리 부는 아저씨도, 시장 입구에서 조개를 까는 아낙들에게 짖궂은 장난치기를 좋아했다는 고(故) 최병구 시인도, 너무 일찍 타계해버린 은발이 아름다웠던 김영일(金英一) 화백도 이젠 신포동 선술집에 얽힌 추억으로 남았다.

바로 오늘, 낡고 작은 의자에 앉아 스테인레스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술잔을 마주치자.

주인 아줌마가 아직 시키지도 않은 안주를 들고와 놓고 “이거 먹어. 오늘은 이게 제일 맛있어”하는 선술집만의 음성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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