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반목과 불화가 만연한 것처럼 보인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특정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가짜 뉴스까지 동원되는 실정이다. 이번 본보 창간호 주제는 ‘융합·공유’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화두라고 여겨진다. 프롤로그를 장식한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궁인 화성행궁 내 좌익문 앞에 설치된 ‘인공 보름달’이다. 수원시가 화성행궁 야간 개장을 맞아 관람객들에게 보름달의 좋은 기운을 심어 주기 위해 지름 5m의 인공조...
인천과 경기는 하늘이 열린 그 처음부터 하나였다. 살아가는 방식과 땅의 모양새는 달랐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로 녹여 내며 공동체로 어우러져 성장해 왔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통해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며 동북아 중심도시로 우뚝 선 인천과 대한민국 인구 4분의 1을 품고 국내는 물론 세계 4차 산업혁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경기도의 성장 키워드 역시 어울림이다. 그렇게 인천과 경기는 어떠한
30년 전 안양은 농촌으로 둘러싸인 소규모 도시, 조용한 도시였다. 1973년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됐지만 15년 뒤인 1988년에도 안양은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다. 당시 재정 규모는 480억 원, 공무원은 800명을 밑돌았다. 지방도시의 면모는 1988년 당시 정부의 대규모 5대 신도시 건설에 안양이 포함되면서 변해 갔다. 1982년 16개 동이었던 행정구역이 1, 2년 간격을 두고 신도시 아파트 입주 시점이 막 1994년까지 분동이 이뤄졌다. 1995년부터 2000...
예로부터 이천은 쌀과 도자기, 온천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 맥주업계를 대표하는 오비(OB)맥주 공장이 들어서고 이어 1980년대 초·중반쯤 소주공장인 진로와 반도체 회사인 현대전자 등 굵직한 기업들이 자리를 잡는다. 이때부터 이천은 생산과 소비의 투 트랙 경제도시로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천시의 과거와 현재 이천시가 최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수도권규제로 크게 성장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관선에 이어 지방자치시대를 맞으면서 민선 시장들의 노...
광주시 30년 전과 오늘 현재의 예산을 비교해 보면 1988년 273억 원이던 것이 현재는 1조690억 원으로 무려 39배나 증가했다. 1988년도와 현재 주요지표를 비교해 보면 인구는 17만2천여 명에서 36만5천여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학교 수도 인구 증가율과 비슷하게 학교는 27개 교에서 54개 교로 늘었다. 가구는 4만3천여 가구에서 14만4천여 가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인구 증가율보다 가구수 증가율이 높은 원인은 1인 가구 증가 여파로 분석된다. 광주지역은 여러 차례 행정구역 개편과 변화를 겪으면서 면적의 ...
시흥이라는 명칭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일원의 지역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잉벌노현,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곡양현, 고려 태조 23년(940)에 금주로 불려오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금천현이라 했는데 이후 조선 정조 19년(1795)에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고려 성종 때(991) 금주의 별호를 취해 시흥현으로 개칭하면서 시흥이라는 지명이 처음 생기게 됐다. 시흥현은 100년 후인 1895년 시흥...
내년 1월 1일자로 오산시는 출범 30년을 맞는다. 대한민국 대표 교육도시 오산이라는 그동안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혁신교육도시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산천을 전국 최고의 도심 청정 하천으로 만들고, 독산산성의 본모습을 되찾아 유네스코 등재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삼미동 옛 서울대 부지에 미니어처 테마파크, 복합안전체험관, 에듀타운을 성공적으로 조성하고 세교2지구 개발을 더욱 촉진하며, 운암뜰 첨단복합단지 개발 및 죽미령을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할 유엔평화공원을 완성하겠다는 목표...
1986년 시로 승격한 과천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청정 주거도시였다. 높은 시민의식과 튼튼한 자립 기반을 바탕으로 문화·관광도시로 변모해 왔다. 1980년 과천신도시 개발사업이 첫 삽을 뜨고, 1982년 정부 제2종합청사가 조성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급속히 바뀌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정부 부처가 대거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다시 변화를 맞고 있다. 과천시의 과거와 현재, 재도약의 청사진을 그려 본다. # 전국 최고의 전원계획도시 과천 과천은 깨끗한 물과 공기를 갖춘 전원도시이다. 시 전체 면적 35.86㎢...
▶민경욱 국회의원 ▶박찬대 국회의원 ▶안상수 국회의원 ▶유동수 국회의원 ▶윤관석 국회의원 ▶정유섭 국회의원 ▶홍일표 국회의원 ▶홍인성 인천 중구청장 ▶이항진 여주시장 ▶김성기 가평군수 ▶이용범 인천광역시의회 의장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김성해 인천 연수구의회 의장 ▶최재현 인천 남동구의회 의장 ▶최찬용 인천 중구의회 의장(이하 가나다 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석승 21세기 안보전략연구원장·교수 ▶강옥엽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강용희 ▶강인순 민관소통위원회 ▶강주수 인천평화복지연대 상임대표 ▶고정현 ㈜...
한 도시의 상권 변화 과정은 그 도시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몰락과 궤적을 함께 한다. 사람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도로와 철도 등 기반시설도 확장된다. 항구 등도 영역을 넓힌다. 그곳을 통해 사람들은 수많은 물류와 기술, 그리고 유행까지 함께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시는 사람과 물류, 기술, 첨단을 달리는 유행이 결집한 ‘상권’, 즉 ‘번화가’를 형성한다. 본보는 인천의 도시 형성 과정과 함께 최근 30년간 번성했던 상권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지역 ‘번화가’의 흥망성쇠 과정을 통해 지역 ...
인천은 30여 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신포동을 중심으로 한 소극장 르네상스 시대를 맞는다. 인천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카페 깐느’가 1974년 개관한 이후 1978년 인천의 대표 소극장인 돌체가 본격적인 소극장 시대를 이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인천에 다수의 소극장이 생겨나 연극과 공연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된다. 소극장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시대가 소통하는 장소다. 「구술로 보는 인천 민간 소극장사」의 저자인 장구보 구보댄스컴퍼니 대표는 소극장 운동의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북부가 ‘평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4·27 남북 정상회담이 기폭제가 됐다. 이곳은 군사분계선(DMZ) 등이 가로질러 접경지역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개발에서 소외돼 주민들의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 경기북부에는 평화를 매개로 봄바람이 불고 있다. 선두에서 남북 교류를 이끌어 나갈 경기북부가 되길 모두가 기원하고 있다. 사실 가평·고양·구리·남양주·동두천·양주·연천·의정부·파주·포천 등 10개 시·군은 그동안 도시화 진행이 더뎌 낙후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지역총생산(GRDP)만 봐도 그렇다. 2015...
2014년 8월 1일 오전 9시 55분께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고양시 덕양구 창릉동 삼송 신시가지로 이사 온 김한길(40)씨 가족이 전입신고를 마친 순간, 고양시는 상주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다. 1992년 2월 1일 시 승격 당시 25만7천834명에 불과했던 상주인구가 22년 만에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울산·수원·창원 등 9개 광역 및 대도시 다음으로 대한민국 10번째 100만 대도시로 거듭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고양시는 일산신도시에 이어 삼송·지축·향동 등지에서 택지개발사업을 활발히 펼쳐 지역도시브랜드 지수 평...
의정부하면 입영 장병들이 거쳐 가는 306보충대와 미군부대, 부대찌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도청 북부청사 등 행정기관이 많아 북부지역의 수부도시 역할도 하고 있지만 그 역사를 논할 때 반세기 이상을 함께 한 미군부대를 빼놓을 수 없다. 306보충대는 1950년대 창설과 이전을 거쳐 1989년 의정부시 용현동에 자리를 잡았다. 매년 입영자와 보충병 등 10만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고, 군입대를 위해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의정부의 군사도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의정부는 한국전쟁 때부터 서울로 진입하고 나가는 중요 관문으로서...
남양주시는 1986년 구리시가 승격·분리되고, 1989년 미금읍이 남양주군에서 분리돼 시로 승격됐다 통합돼 도·농복합형의 통합시로 거듭났다. 농촌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부를 인구밀집지역으로 설정해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도시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도시근교형 농촌지역으로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의 통합은 도시와 농촌의 통합이었지만 마찰 없이 진행됐다. 도·농 통합은 그동안 왜곡된 도시와 농촌 간 기형적 발전 격차를 지방자치단체의 재원 분배 최적화와 행정효율의 극대화를 통해 해소하자는 일종의 대안이었다. 통합 이후 도시와 농촌...
양주는 경기북부 행정 역사의 모태이자, 수도권의 행정중심도시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옛 양주의 위상과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 정체성을 확립하는 등 북부 중심도시로 도약을 위해 쉼 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서울시 일부와 의정부시, 동두천시, 남양주시, 구리시, 연천군 일부, 고양시 일부 등을 관할하던 양주와 미래형 복합도시로 변모하는 현재의 모습을 조명해 본다. # 양주시의 과거 양주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이었다. ...
파주시는 상주인구 45만 명에 경기서부권 신흥 중심도시로 우뚝 선 가운데 한반도 평화시대와 남북 교류시대를 맞아 ‘파주는 평화가 경제다’라는 슬로건 아래 통일경제특구 조성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시대적 변화와 새로운 행정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민생 그리고 현장중심으로 행정력을 집중하는 시민중심의 모범적인 지방정부로 거듭나고 있다. IT 중심 지식산업과 개성공단 연관사업 및 물류산업 등이 망라된 남북경제협력단지를 조성하고, 대북 행정·상업·기술·금융·문화 교류도시 등을 포함하는 남북 교류 거점도시로 북파주의 균형발전을 도모하...
올해 시 승격 20주년을 맞는 김포시는 지리적으로 서울에 인접해 있다. ‘남북 접경지’라는 특수성으로 각종 개발에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1990년 초반 북변택지지구 개발사업을 시작으로 사우택지지구, 신곡택지지구 개발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면서 도시 규모를 확장했다. 2003년 정부의 김포신도시 발표는 도시개발지역으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김포한강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으로 인구 42만 명의 중견도시로 급성장한 김포시의 과거와 지금의 발전상을 들여다봤다. # 풍요로운 고장 김포(1980년대) 김포시는 동...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현재 동두천은 많은 난관에 부딪혀 있다. 30년이 넘도록 큰 변화 없이 정체돼 있는 낙후된 도심을 보면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군사시설보호법, 한미행정협정에 의한 미군 공여지 등 각종 규제가 동두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책임지며 평화수호자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온 동두천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다시 한 번 발전과 도약의 시기를 마주했다. 동두천이 앞으로 유럽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종단철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남북 교류와 유럽...
30여 년의 세월은 구리시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1990년대 초·중반 토평동 일대와 인창동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와 함께 구리시 중심인 돌다리 인근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먹거리·볼거리 등이 생겨났다. 특히 돌다리 인근 수택동에는 이 무렵 곱창골목이 형성되면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도시는 향락·소비도시로 전락하는 등 기형적으로 발전했고, 대규모 택지개발로 인해 한때는 거대한 서울시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