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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고왔던 지난 토요일,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업실에 있다고 와서 쑥떡도 먹고 차도 마시자고 부른 것이다. 지인은 강화도에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는지라 주말농부로 먹을거리를 키운다. 밭에서 나는 작물을 골고루 심어 육류를 제외한 대다수의 식재료를 자가 공급하고 있다.업무 과중으로 스트레스가 오거나 머리 복잡한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도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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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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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원도 아닌 허드렛일하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었습니다.” 정직원에 비해 임금과 처우가 열악했을 그녀는 책임을 다했다. 정작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의 목숨이 먼저라 수많은 생명을 나 몰라라 했는데 그녀는 자기 책임을 다하느라 꽃다운 나이 스물둘에 생을 마감했다.고운 영혼 박지영을 의사자로 추대해 국립묘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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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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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최고의 인간관계다. 고매한 분들의 잠언은 당연하고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한마디 거들고 끼어들 수 있는 주제다. 말로는 쉽고도 단순한 이 명제가 실행은 어려우면서 명쾌하지 않다.‘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흔히들 사랑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엄마가 아기를 낳을 때 뇌하수체에서 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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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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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낮 기온이 올라 완연해진 봄기운에 베란다에서 다육이 화분을 정돈하고 있는데 위층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새로 이사 온 젊은 새댁이다. 바로 아랫집 남자에게 면박을 주며 신경질적으로 베란다 창문을 닫는다. 담배 연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피자니 부인 눈치가 보이고 밖으로 나와 피자니 매번 성가시고 귀찮아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고 담배를 피운 모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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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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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과 함께 식구가 한 명 늘었다. 인천으로 대학 진학을 온 친척 아이다. 지난 한 해는 하숙을 했는데 겨울방학 때 자기 집인 대전으로 내려가 있다가 개학 무렵 올라올 예정으로 느긋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하숙집 주인이 일 년치 하숙비를 선불 지급하겠다는 사람과 계약을 했으니 방을 빼 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개학날이 임박해 하숙집 알아볼 경황이 없으니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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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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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달 2월도 막바지다. 신년 시작이라 희망과 기대로 온갖 축하를 다 받은 1월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해지는 달이다. 거기다 날짜도 30일을 채우지 못하는 어정쩡이라 묻어가는 달처럼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전도 있다. 2월은 졸업을 포함해 인생의 통과의례로 보면 끝이지만 끝과 연결된 시작을 물고 있어 새 출발을 도모하는 달이다. 우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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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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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참 긴 세월이다. 민망한 가정사까지도 허물없이 털어낼 수 있기까지는 사연도 세월도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초보엄마 넷이 모여 육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모임이 지금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다. 열정과 사명감으로 마음만 부산스러웠지 노련한 경험이 부족했던 초보엄마들이라 아이를 키우는 데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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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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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의 해에 거는 기대가 각별했던 새해도 한 달이 지났다. 열두 달에서 한 달이면 결코 적은 몫이 아닌데 청마의 기운은 아직도 발현이 안됐는지 가시거리 밖이다. 머잖아 설이다. 진짜 청마의 해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어리벙벙 흘려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으니 설을 계기로 야무진 새해 각오를 다시 세워본다. 단순명료해야 지켜질 확률이 높다는 심리학적 분석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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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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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면서 대단한 결심을 했다. 지난 몇 년간 고민했던 일이라 마무리짓고 나니 홀가분하다. ‘대단한 결심’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만 대단이지 남들이 볼 때는 별 일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호들갑인가 싶어도 세상은 신경조직처럼 복잡하고 미세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네트워크 같아 당신 일은 당신네 사정인데 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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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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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다. 도로야 말끔하지만 쌓인 눈이 얼어있어 체감온도가 만만치 않은 날씨다.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안색이 좋지 않다. 빈속에 차를 타 멀미가 심하다고 하신다. 산곡동에서 구월동 YWCA 건물까지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가 아니다. 기껏해야 20분 남짓 걸리는 시간인데 많이 힘들어하신다. 몸이 건강하지 않아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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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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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t.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버리는 쓰레기의 양이라 한다. 주말 내내 집 대청소를 하면서 정리정돈을 했다. 언젠가 쓰일 때가 있겠지 하면 쌓아둔 물건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했다. 엄청난 양이다. 서랍장에서도, 싱크대 수납장에서도, 베란다 창고에서도 이런 물건이 있었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소비물품이라 계속 사 써왔던 물품도 예전에 구매한 사실을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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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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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가을의 끝이면서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다. 절기상으로 입동을 지났고 소설도 지났다. 그러니까 절기에 맞게 겨울에 접어들었고 소설이라 할 만한 눈도 내렸다. 본격적인 겨울 시작이다. 삼라만상이 멈춘 듯이 웅크리고 있는 겨울은 한 잠 쉬어가는 숨고르기 같은 시간이다.봄 여름 가을, 거둬들일 수확을 기대하면서 누구나 애를 썼다. 소출이 적어도 곡간이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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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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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빈곤 노인을 돌보는 봉사다. 다녀오면 늘 마음앓이를 한다. 추워지는 날씨를 대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 보람있었다는 뒤풀이 인사가 민망해진다. 일시적 치료와 연탄 이 삼백 장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생의 마지막 주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애잔함으로 남는다. 스러져가는 기운은 물기가 말라 가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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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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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일은 안 한다. 그러니 신경쓰지 마라.” 친정아버지 생신이 곧 다가온다. 매년 해왔듯이 생신 날짜 직전 주말에 모여 식사를 하고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다녀온다. 작년에 팔순 했으니 살 만큼 살았고 생일상 받을 만큼 받았다며 올해는 당신의 형제와 만나 살아온 회포를 나눌 참이라고 하신다.우리 아버지 참 팍팍한 시대를 사셨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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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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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멋진 계절, 가을의 중간 10월이다. 온화해진 햇살과 시린 하늘이 연가를 부르고 시를 쓰게 만든다. 온난화 탓에 봄·가을이 사라져간다느니 간절기로 전락해 존재가 미미해졌다느니 기후 변화에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지만 가을은 가을이다. 가을, 흔히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심리적인지 생리적인지 사회현상인지 분야마다 전문가가 열변을 토하고,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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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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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뜨거운 입술을 가진 주인공은 변덕이 심하고 까다로워서 한 달 두 달 세 달, 내내 마음을 후끈 달궈놓고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조마조마 흥미진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작가가 여름을 묘사한 글이다. 읽는 순간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예카테리나2세다. ‘변덕을 부리다’를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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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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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이번 달에는 추석이 있어 모임 날짜를 조정하다 보니 월화수목금토일 비는 날이 없다. 비장한 도원결의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점심과 저녁 약속이 번갈아 있던 날은 늦은 밤 귀가 길도 신경 쓰이고 식구들 눈치도 보게 된다. 짚어보니 이런저런 연으로 발을 들어놓은 모임이 꽤 된다. 하나씩 늘어난 모임은 과부하가 걸려 스케줄 소화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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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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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했던 여름의 끝자락이다. 절기상 처서도 지났다. 열대야가 사라지면서 바람결에 까슬함이 느껴진다. 밤까지 이어졌던 열기가 식으니 생각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격정과 무기력에서 벗어난 안정이다.가을은 정서의 깊이가 온유해지는 시간이다. 세상을 대하는 눈빛이 어느 계절보다 부드러워 부산스럽지 않다.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자고 한다. 그래서인지 독서 캠페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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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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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한 여름이다.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수은주가 불볕더위란 말을 실감나게 한다. 전력난까지 겹쳐 최악이라 올 여름은 휴식도 피서도 만만하지 않다. 인파 복잡한 휴가철 피서지가 내키지 않아 집에서 보냈다. 예전처럼 휴가 여행에 들뜨지도, 기대도, 기다림도 없어진다. 나이 먹은 탓인가, 그냥 집이 제일 편하다. 최대한 간편한 복장으로 세상사람 시선 신경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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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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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오후가 한가롭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창가에 서서 빗소리를 들었다. 키 큰 나무 잎에도 키 작은 화초의 꽃잎에도 똑같은 양의 비가 내리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빗소리가 제각각이다. 식물들은 저 많은 양의 빗물을 적당히 필요한 선에서 품고 내뱉고를 알맞게 조절한다. 키가 크든 작든 여러 해를 살든 한해살이풀이든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있다. 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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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