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 활짝 피어서 와.”그녀의 인사말이 시적이다. 한나절 먼저 햇살이 어딘데 서로 다르다는 요즘의 세대차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근 10년이나 아랫사람인 그녀인지라 생각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당연히 나와는 달랐다. 쉽게 친해지는 사교성이 없어서 오래 겪어야 마음이 열리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마음을 툭 건드리고 거침없이 팔짱을 꼈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5.03.24
-
“여자는 남자가 성폭행을 하면 조용히 허락해야 한다.” 성폭행 후 여대생을 살해한 범인이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도라는 나라가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가 있기는 하지만 성범죄자의 말 속에 담긴 왜곡된 의식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얌전하게 성폭행을 받아주지 않은 여자의 잘못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5.03.10
-
사회현상의 변화를 급류 타듯이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 중장년층 이상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IT기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신세대는 입맛도, 사고방식도, 소통 방법도 혁명이었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것에 저어하는 우리 세대는 마음이 불편해 갈등이 많았다. 명절에 다양한 연령대의 일가친척이 모이면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5.02.24
-
마음이 팍팍하면 사람들은 점집을 찾는다.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사람 관계일 수도 있고,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나 간절한 소망을 갈구하는 욕심에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게 된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좋은 운을 기대하는 간절함은 똑같다. 게다가 신년 시작인 정월이면 1년 신수를 묻는 사람들로 이곳은 호황이다.절기를 중시하는 음력에서는 신년의 시작이 입춘이다.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5.02.10
-
비 오는 주말에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추위가 많이 풀어져 내리는 비가 봄비인가 할 정도로 포근했다. 대지를 적시는 비는 생명을 움트게 하는지라 결혼식 날에 비가 오면 잘 산다고, 하객으로 참석한 어르신들이 덕담을 한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가슴이 촉촉해져 있는데 결혼식이 특별해서 뭉클한 축하 자리였다.주말마다 이어지는 결혼식 식순이 일률적이다 보니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5.01.27
-
시속을 비교해 봤더니 달팽이는 0.0004㎞, 보통 사람은 4㎞, 달리기 세계기록 보유자는 37.4㎞라고 한다. 사람의 평균 보행속도로 보면 1시간에 10리를 간다는 계산이다. 이 정도면 세상 풍광을 눈으로 담을 만한 속도는 되는 셈이다. 요즘 세상에서 걷는 속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느림은 게으름과 동의어라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하고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5.01.13
-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다. 올 한 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르는 성격을 밝혀 의미를 규정한 것일 텐데 적절하다는 평이 많다. 알다시피 ‘지록위마’는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난 후, 환관 조고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기 편을 가려내기 위해 쓴 술책에서 나온 말이다. 고사성어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12.23
-
12월, 코끝 찡한 냉기가 스며든다. 시린 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발걸음도 분주해진다. 한 해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채우지 못한 성과에 조바심이 나고 짧아진 해만큼 남은 시간도 달랑달랑이라 마음이 바빠진다. 생각해 보면 정초부터 분주했고 열심이었지 마냥 게으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맘때가 되면 아쉬워 자책을 하게 된다. 대단한 업적으로 마무리가 됐더라면 한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12.09
-
내 위로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세상에 난 지 3일 만에 새가 돼 날아갔다고 한다. 아버지 고향, 그러니까 내 친가였던 마을은 오지 산골이다. 소달구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산길을 한참 올라가면 매복해 있는 진지처럼 납작 엎드린 20여 호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첫아이를 낳았다. 서울 계신 아버지는 당신 첫아들이 태어났다는 전보를 받고 곧장 내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11.25
-
일전에 한완상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두 번의 부총리를 겸하면서 18대 통일원 장관과 제1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신 터라 시간 여유가 되실까 걱정했는데 흔쾌히 인천까지 와 주셨다. 기대했던 만큼 강연이 좋았다. 1936년에 태어나셨으니 조만간 팔순 연세가 되신다. 80살이 가까운 세월을 사시는 동안 세상을 따뜻함으로 품어줄 수 있는 가슴이 되기까지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11.11
-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단체에서 결혼이주여성과 일대일로 멘티-멘토 관계를 맺어 줬다. 각 분야의 전문직 여성들이 멘토 역할을 하고 타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멘티가 되는 모임이다. 크게 내세울 전문성이 없어서 사양했더니 푸근하고 따뜻한 이사님 성격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멘토가 됐다.7명의 멘토와 7명의 멘티가 첫 모임을 합동으로 가졌다. 한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10.28
-
갈매기 몇 마리 선회하며 작별 인사를 고한다. 썰물이 에둘러 먼 바다로 길을 재촉한다. 나가는 물은 허둥거리며 뻘을 게워 놓고 고르지 못한 발걸음으로 달음박질친다. 배가 몇 척 떠 있다 슬금슬금 모래펄에 주저앉는다. 물길 위로 이곳까지 온 배는 모래펄에 얹혀 휴식을 취한다. 물길에 삭은 상처를 다듬고 치료하며 배는 휴식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갈고리로 뻘을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10.14
-
사는 일에 정해진 노선이 있다면 똑같은 생(生)이 살아지려나. 흔히들 생은 아름다운 것이라 이미 탄생 자체로 한 생명은 손색 없는 축복이라고 한다. 우리 삶이 올 때 축복이었듯이 가는 길도 축복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지만 얄궂게 꼬이는 일들이 매복해 있다가 발 걸어 넘어뜨리면 난감해진다. 그래도 바람은 세월이 공평하게 흘러서 대차대조표에 손실이 없다면 억울함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9.23
-
휴대전화만 있으면 해결 못할 일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궁금증도 손가락으로 터치 몇 번이면 성가셔 하지도, 짜증내지도 않고 친절하게 답을 보여 준다. 좋은 세상이다. 장소에 대한 공간 감각이 없어서 유난스러운 나도 이 시대 덕을 보고 산다. 사거리 이쪽에서 직진했던 길을 저쪽에서 오게 되면 처음 길이라 낯선 곳이 되고 마는 소문난 길치다. 세상이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8.26
-
-
7월의 아일랜드는 온통 초록 융단이다. 햇살 맑은 날은 싱그럽고, 바람 불어 비 내리면 몽환적이다. 그 전원에 야생화까지 지천이라 여행기간 내내 눈이 즐거웠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여서 그런가, 정서도 닮아 있는 것 같아 낯설지 않다. 800년을 영국 식민지로 수탈을 당한 역사도, 감자 기근으로 100만 명이 아사했다는 비극도, 고단을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7.22
-
그이의 세월은 층층시하 다사다난했다. “어려운 고비가 다뿍 한도 초과로 닥쳐도 사단이 나면 비켜가든, 한판 붙어 정면 돌파를 하든 또 살길이 생기더이다.” 세상과의 대련으로 키워진 강단은 다부져 웬만한 일은 발길질 서너 번이면 끝, 정리되더라고 한다. 낙낙한 미소 뒤에 벅찬 일도 힘겨운 사연도 긴하지 않은 척 앙다물고 있는 그이의 가슴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7.08
-
그이는 평소에도 기인다웠다. 길고양이를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며 고급 식기를 백화점 전문매장에서 사 오기도 했다. “우리 집 차고에서 쉬어 가곤 하는 오만 도도한 그 고양이가 사실은 이집트 왕녀였데. 나는 그녀를 모시던 시종이었고.”뜬금없이 툭 던지는 말들이 사차원이라 떠돌이 길고양이에 관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그저 세상 걱정 없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6.24
-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곯아떨어져 자고 싶네요.’ ‘그래요 푹 자 두세요. 당선이든 낙선이든 또 분주한 하루가 될 테니까요.’ 밤 열두 시가 넘었으니 정확히 선거날이다. 후보자 아내로 체력 고갈 상태가 된 그녀와 나눈 마지막 문자통화 내역이다. 칭찬에도 비난에도 면역이 될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는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6.10
-
“불효하는 자식한테는 이미 준 재산이라도 재판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는데 그렇게라도 하고 싶네.” 세상에 안착할 수 있게 온갖 정성을 쏟아 키워 놓았더니 자기 몫 챙기는 데는 천리안으로 덤비고 자식 도리는 맹인 흉내라며 속상해 하신다. 일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쟁쟁하신 친척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경제력도 사회적 지위
오피니언
기호일보
2014.05.27